[투데이 窓]문화콘텐츠 삼국지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2025.09.02 02:05
임대근(한국외대 컬터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열풍이 거세다. K팝과 한국의 문화자원을 뒤섞어 만든 애니메이션은 흥행과 동시에 특정한 현상으로 번져간다. 주인공의 독특한 의상과 소품은 젊은 세대의 세계적인 유행이 됐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물론 일상의 다양한 장소와 먹거리가 훌륭한 콘텐츠 자원으로서 다양한 파생문화를 만들고 있다.

'케데헌' 열풍이 못마땅한 이들도 있다. 중국의 일부 네티즌은 '케데헌'의 주인공 이미지에 자국 애니메이션 '너자'의 캐릭터를 합성한 팬아트를 만들어냈다. "한국 콘텐츠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중국 문화가 동아시아 문화의 원류이기 때문에 더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동아시아 문화를 둘러싼 갈등의 이면에는 콘텐츠산업의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문화콘텐츠산업은 이미 경쟁국면에 접어들었다. K팝, 재패니메이션, 중국 숏드라마는 세계 시장을 제패하려는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한중일은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 삼국지'를 방불케 하는 각축전을 벌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최근 콘텐츠 시장규모 조사를 보면 중국은 세계 2위(4725억달러)고 일본은 세계 3위(1898억달러)며 한국은 세계 8위(679억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은 양적 규모와 질적 수준을 모두 갖췄다. 망가, 게임, 재패니메이션이라는 IP(지식재산권)를 기반으로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피스' '드래곤볼' '포켓몬스터' 같은 메가 IP는 영화, 게임, 굿즈 등으로 확장돼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스튜디오지브리 같은 애니메이션은 일본 콘텐츠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중국은 압도적 규모를 내세운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인구 14억명의 내수시장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거대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와 드라마는 할리우드와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무협, 판타지 등 고유의 문화를 담은 장르물은 세계 중화권의 팬덤을 끌어모은다. 선풍적 유행을 몰고온 숏드라마는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았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은 막대한 투자로 콘텐츠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류를 기반으로 콘텐츠산업을 키워왔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은 한국 사회의 특수한 정서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결과다. BTS(방탄소년단)로 대표되는 아이돌그룹은 음악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웹툰, 웹소설 등 원천 IP는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돼 K스토리의 저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콘텐츠산업은 일본의 안정적인 IP 생태계나 중국의 거대 자본력에 비하면 여전히 구조가 취약하다. 한탕주의식 성공에 기댄 제작환경, 제작인력에 대한 열악한 처우, 유통시스템 부재는 K콘텐츠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K콘텐츠산업은 이런 요인을 잘 관리해야만 중국과 일본의 견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공한 IP가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으로 확장해나가는 생태계 확장전략, 넷플릭스 등 글로벌 유통시스템은 물론 다양한 스튜디오와의 공동제작 같은 글로벌 협업의 다각화,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과 문화자원의 결합,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한 투자 등 여러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문화콘텐츠 삼국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의 막강한 IP, 중국의 거대자본, 한국의 뛰어난 창의성이 일합을 겨루고 있다. 이 치열한 각축전에서 K콘텐츠가 더욱 건강한 성장을 이뤄내려면 기업과 정부, 제작업과 유통업 모두 힘을 모아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창의성, 기술력, 자본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한탕주의를 넘어 진정한 문화강국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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