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자연유산 르네상스를 열기 위한 과제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2025.09.03 02:05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국가유산청 자연유산국이 주최한 '자연유산정책 미래전략포럼'에 참석했다. 현행 자연유산법에 따르면 자연유산은 '자연물 또는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조성된 문화적 유산으로서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새로 출발하면서 자연유산국이 신설됐기에 이번 포럼은 의미 있는 자리였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연유산 보호계획, 지질자원 관리·활용, 지역경쟁력 강화 등 다양한 주제로 발표하고 열띤 토론도 벌였다.

자연유산 가치에 대한 강한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포럼을 지켜보며 자연유산 정책의 시급한 과제로 2가지를 떠올렸다. 첫째, 첨단 과학기술과 AI 도입이다. 자연유산은 과학과의 관련성이 문화유산보다 훨씬 크다. 지구역사, 생명체 진화,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와 증거를 제공하고 지질, 동식물, 생태, 조경 등은 자연과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기후위기,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자연유산 훼손을 우려한다. 자연유산은 그냥 자연의 역사가 아니라 그 속에 대자연의 숨결과 함께 수천 년을 이어온 인간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접점이자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역사적 유산이다. 그간의 자연유산 보존·연구는 주로 물리적 방식에 의존했는데 동식물 표본채집, 지질표본 보관 등 전통적 방법으론 그 속에 깃든 인간문화와 삶의 흔적까지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새로운 관점과 첨단기술로 자연유산을 보존하면서 활용해야 한다. AI기술은 가장 유용한 도구다. X선, CT스캔, 분광분석기로 표본손상 없이 구조와 성분을 정밀분석할 수 있지만 여기에 AI가 더해지면 자연 속에 새겨진 인간활동의 흔적까지 추론해 읽을 수 있다. 동식물 천연기념물의 유전체 정보를 AI로 분석하면 생물다양성 변화 속 인간의 영향을 파악하고 지속가능한 공존을 모색할 수도 있다.

새 정부가 AI정책에 역점을 두는 정책모멘텀을 자연유산 분야에도 적극 도입·활용해야 한다. 자연유산 가치의 보존·관리를 위해서는 첨단기술 활용이 필수다. 특히 AI기술은 데이터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패턴을 찾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둘째,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이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프랑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등 선진국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연사박물관을 통해 인류의 기원부터 지구역사까지 방대한 자연의 이야기를 국민과 소통하며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심어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중앙과학관, 국가유산청 국립자연유산원 등 독립적인 조직이 있을 뿐 대한민국 자연사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구심점은 없다. 이런 파편화한 구조로는 효율적 표본수집, 체계적 연구, 자연사 통합콘텐츠 제공이 어렵다. 흩어진 기능을 통합해 한곳에 모으는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이 시급한 이유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은 국가의 과학과 문화의 위상을 보여주는 핵심 인프라이기에 응당 국가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공룡화석, 지질유적, 천연기념물, 명승 등 자연유산에 전문성을 가진 국가유산청이 최적임자며 연구·관리·운영효율성 면에서도 국가유산청 소속 기관으로 두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유산청은 정부 AI정책과 연계해 자연유산 속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분석, 통합적 환경변화 예측 및 생태계 진단 등 자연유산 AI모델 개발에도 적극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자연유산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또한 국립자연사박물관은 박물관 하나 더 짓자는 게 아니라 자연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과학적으로 탐구하며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첨단과학·AI기술 도입,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으로 자연유산의 르네상스를 열어갈 때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