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는 물건 팔고 싶으면 입장료 내고 들어오라는 의미입니다. 기업은 거기(미국)에 물건을 팔지 말지 생각해야지, 입장료를 낼지 말지 고민해선 안 됩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지난 7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한 대응 전략을 이같이 얘기했다. 그는 "기업은 미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입장료 상관 말고 직접 들어가서 생산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서 회장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전제)'로 "미국 뉴저지에 있는 미국 일라이릴리(Eli Lilly, 이하 릴리) 공장 인수를 추진중"이라며 "현지 생산거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서 회장의 행보는 군더더기가 없고 과감했다. 지난 23일 셀트리온은 릴리의 현지 생산시설을 인수한다고 공식화 했다. 인터뷰 직후 이사회를 소집해 인수관련 투자승인을 받은 이후 실제 릴리와의 생산시설 인수를 발표하는데 두 달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초기 투자비용만 7000억원, 총 투자규모 1조4000억원에 이르는 큰 딜이지만 협상은 속도감 있게 진행된 듯하다.
셀트리온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관세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관세 대응 선제조치로 미국에 2년 치 재고를 쌓았고, 2년 뒤엔 현지 생산을 직접 할 수 있어서다. 관세 대응과 더불어 미국에서 주력제품의 생산과 판매까지 일원화된 공급망을 확보했다. 셀트리온이 목표로하는 글로벌 선도기업이 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서 회장은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발생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우리에게 큰 위기가 될 것이란 의견을 여러 경로로 지속해서 밝혀 왔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셀트리온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로 돌아올지 단언할 수 없지만, 셀트리온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으론 최초로 관세정책에 대응해 미국내 생산기지를 확보한 것은 사실이다.
기민한 대응의 배경엔 서 회장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서 회장은 회장이 직접 기업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기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의 위치가 어디이고 어디로 가 하는지, 거기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이것을 회장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서 회장은 "회장은 미래에 대한 자신이 생길 때까지 고민해야 한다"며 "기업에서 헤드(회장)가 제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헤드가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고 안주하면 본인은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조직은 더 성장하지 못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서 회장은 회사 내의 주요한 일을 직접 파악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의 현안은 매일 두 번의 임원 회의를 통해 파악한다. 특히 오너 경영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서 회장은 "기업경영에서 어떤 도전에 직면해 응전이 필요할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그 감각이 중요하다"며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다"고 했다.
셀트리온은 서 회장의 과감한 결단으로 성장했단 평가도 받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분야를 개척한 것이 그렇고 적극적으로 글로벌 판매망을 구축한 것도 그렇다. 당시는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단 평가를 받았던 결정들이다.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오너로서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단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강력한 리더십은 바이오산업처럼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 더 잘 어울린다.
셀트리온의 성장은 한국이 바이오 산업에서도 글로벌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는 한국 바이오 산업 생태계 전체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서 회장의 등장은 좁게는 셀트리온이란 회사에, 넓게는 우리 바이오업계에 온 행운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