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포인트] '만만디'에서 '차이나 스피드'로 변신한 중국

[딥포인트] '만만디'에서 '차이나 스피드'로 변신한 중국

김재현 논설위원
2026.04.02 02:00

여공이 하루 14시간 일하던 중국
첨단산업 휩쓰는 지금도 996근무
매년 STEM 인재 500만명 배출
중국의 이공계 중시문화 배워야

2003년 3월 7일 중국 칭다오에 도착해 시골 기차역같은 공항을 빠져나와 빵차(소형 승합차)를 탔던 기억이 난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급성장하는 중국을 알고 싶어 한국 종합상사를 그만두고 칭다오에 있는 한국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당시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이 칭다오 외곽 청양구에 진출해 있었는데, 그때 청양구는 교통량이 적어 도로에 차선도 안 그려져 있을 정도로 시골이었다.

필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액세서리 회사의 무역부에서 현지에서 생산한 귀걸이·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미국, 유럽에 있는 바이어에게 수출하는 업무를 했다.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1970년대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번창하던 액세서리 업체들은 대부분 1992년을 시점으로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하고 물류 여건이 좋은 칭다오로 이주했다.

노동집약적인 전통 제조업이 중국을 가공무역기지로 활용하려던 때였다. 필자가 일하던 액세서리 업체는 중소기업이지만,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1000여명에 달했다. 대부분 10대 후반 여성인 이들은 공장 라인에서 구슬을 실로 꿰거나 스톤을 접착제로 붙이는 일을 했다. 날마다 오전 7시30분부터 저녁 9~10시까지 일하고 선적일이 임박해서는 주말에도 출근하면서 이들이 받는 월급은 약 1000위안이었다. 당시 환율인 위안당 130원으로 따지면 불과 13만원이다.

지금은 중국 생산직 근로자의 월급이 약 5000위안으로 올랐다. 현재 환율인 위안당 220원으로 따지만 110만원이다. 원화로 따지면 20여년동안 월급이 8배 넘게 오른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활용하던 저임금 노동력 공급기지로서의 중국의 역할은 일찌감치 끝났다.

8배 넘게 오른 월급말고도 변한 건 많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을 말할 때는 꼭 '만만디'(慢慢地)라는 표현을 썼다. 사전적 의미는 '천천히'로, 그들의 여유로운 기질을 뜻하는 말이다. '빨리빨리'로 상징되는 한국에서 온 한국인들은 자신의 뜻대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주지 않는 중국 근로자들을 보면서 "중국은 역시 만만디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은 누가 만만디인지 모르겠다. 한국이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4.5일제도 검토 중이지만, 중국은 996근무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로 딥시크를 내놓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도 미국에 버금갈만큼 앞서가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계는 신차 개발 주기를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절반에 불과한 18~24개월으로 단축시키면서 내수 시장에서 폭스바겐·토요타를 몰아내고 있다.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차이나 스피드'가 중국의 제조업 굴기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칭다오에서 3년간 일한 뒤 베이징대에서 MBA를, 상하이교통대학에서는 경영학 박사를 했다. 그때 캠퍼스에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벅머리를 하고 다니던 학생들이 지금 중국을 이끄는 엘리트로 성장했다. 중국 대학의 위상도 달라졌다.

글로벌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글로벌 연구기관 톱10 중 중국 대학·연구기관이 9곳이다. 중국과학원(CAS)이 1위를 차지했고 2위만 미국 대학(하버드대)이 가져갔다. 필자가 거쳤던 베이징대(5위), 상하이교통대(9위)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서울대가 59위를 차지했다.

중국 대학에 매년 쏟아져 나오는 500만명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재들이 중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필자가 중국에 처음 갔던 2003년이나 지금이나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다. 다만, 그때는 중국이 만드는 게 대부분 액세서리, 의류, 가구였다면, 지금은 전기차, 스마트폰,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바뀌었다. 또 그 때는 여공·농민공 등 생산직 근로자들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STEM 인재들이 핵심역할을 하고있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한국, 주 52시간제로 묶인 한국이 중국의 제조업 굴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김재현 논설위원 /사진=임종철
김재현 논설위원 /사진=임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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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논설위원

중국과 금융에 관심이 많습니다. PhD in f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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