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사·부(師·父)의 마음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5.11.28 18:00

[오동희의 思見(사견)]

(창원=뉴스1) 윤일지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이 2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식에서 아들 이지호 소위에게 경례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28/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창원=뉴스1) 윤일지 기자

1987년 무렵의 일이다.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한 아들의 스승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학교에 의사를 전한 모양이다.

당시 동양사학과 A 교수는 학과의 가장 어른인 민두기 교수(2000년 작고)에게 "이재용 학생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식사를 한번 모시고 싶다고 합니다"라고 알렸다.

민 교수는 A 교수에게 "그동안 다른 학생 부모들의 식사 초대에도 응했나요?"라고 되물었다. "아닙니다"라는 A 교수의 답변에 민 교수는 "그런데 왜 이재용 학생 부모의 식사 초대를 나한테 전하는 거죠? 똑같은 제자들인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공부시키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민 교수를 비롯한 동양사학과 교수들 덕에 이재용 학생은 어떤 특혜도 없이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자식을 학교에 맡긴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그 학생을 바르고 공정하게 가르치겠다는 스승의 마음으로 되돌려준 사례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얘기다.

그 후 이건희 회장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든 때에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아들의 87학번 동기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아들 친구들의 젊은 패기와 당찬 얘기를 들었던 이 회장은 "언제든 취직할 때가 되면 찾아오라"고 했지만, 졸업 직후 단 한 명도 이 회장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현재는 1명이 삼성전자에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인 지호 군의 해군장교 입대가 화제다. 28일 11주의 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한 이지호 소위는 훈련 기간을 포함해 앞으로 39개월간 복무하게 된다.

임관식에 앞서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군 교육기관 관계자가 이 회장에게 임관식 전에 차 한잔 하자는 제안을 건넸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식을 군대에 맡긴 아버지 입장에서는 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다. 이건희 회장이 아들의 스승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하려던 심정이 이재용 회장이라고 왜 없었을까.

하지만 이 회장 측은 이 요청에 대해 '무응답'으로 간접적인 사양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자신을 평범한 제자 중 한명으로 대했던 은사의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아들이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아버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옳은 결정이다.

이번 사관후보생 수료식은 11년 전 최태원 SK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의 자원입대에 이어 우리 사회에 국방의 의무를 되새기게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장자가 미국에서 태어난 선천적 이중국적자이지만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자원입대한 것은 허위국적을 취득하고 병역을 면탈하려는 우리 사회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우리 사회에는 잠깐의 안이를 위해 소중한 가치를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자신에게 좋은 것(Good)이 반드시 옳은 것(Right)은 아니다. 옳은 결정이 당장은 힘들 수 있지만 결국 역사에는 꽃으로 피어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가족과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대한민국 모든 국군 장병들의 건승을 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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