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광화문의 빛, 공공성과 조화 이뤄야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2026.02.03 02:05
임대근(한국외대 교수 / 한국영화학회장)

광화문이 빛으로 물들고 있다. '광화'라는 말이 유래한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성어 광피사표(光被四表)의 뜻을 이제야 문자 그대로 실현하는 것 같다. 유수 언론사 건물의 벽은 이미 대규모 전광판으로 빛난다. 이에 질세라 크고 작은 건물의 벽에도 속속 전광판이 들어선다. 광화문광장은 이제 곧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처럼 형형색색의 장식으로 빛날 것 같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9월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을 확대운영한다고 밝혔다. 2016년 서울 코엑스 일대가 1기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됐고 2기에는 서울 광화문광장, 서울 명동관광특구, 부산 해운대해변이 지정됐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영국 런던 피카딜리서커스,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처럼 '빛나는'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다.

규제완화로 도시의 벽은 광고매체로 전환되고 있다. 건물은 회색빛 외피 위에 발광하는 인터페이스를 입고 있다. 건물과 미디어 체계가 협력하면서 도시의 감각을 다시 설계한다. 초대형 전광판은 건물주의 광고판이 됐다. 도시의 벽 위에 설치된 광고판은 행인의 주의를 끌어들임으로써 자본을 빨아들인다. 전광판은 사람을 붙잡고, 머물게 하고, 촬영하게 하고, 공유하게 만든다. 도시를 걷는 시민은 '트래픽'이 되고 도시는 플랫폼이 된다.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가장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에서 일어난다. 광화문은 공공의 의지와 감정이 발산하는 장소였다. 우리 현대사의 저항과 분노, 축제와 오락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지층 위에 광고의 빛이 덧칠된다. 교보문고가 철 따라 바꿔온 아름다운 시의 한 구절은 이제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게시물로 전락할 것이다. 전광판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스크린이 늘어나면 공공을 위한 메시지는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광고의 편집권을 쥔 건물주와 대행사는 시민을 대신해 도시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미디어아트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저 광고 일색으로 디지털 스크린을 채우기보다 다양한 예술적 감성을 담은 시도를 거듭하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연말연시에 '서울라이트 광화문'이라는 미디어파사드 전시를 개최했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광화, 빛으로 숨쉬다'란 주제로 흥미로운 전시를 선보였다. 미디어아트는 물론 광고의 대안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광고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디어아트는 도시의 야경이 완전히 광고에만 지배되지 않도록 하는 디지털 생태계의 자리를 꼭 차지해야 한다.

대도심 곳곳이 빛으로 채워지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바로 디지털과 플랫폼의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한 발광이 공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발광공해는 시민의 시야피로, 보행안전, 교통부주의 등과 같은 안전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도시가 스크린이 될수록 걷고 쉬고 머무는 시민의 일상은 공격받기 쉽다. 시민은 빛의 야경을 소비하는 대신 끊임없이 주의를 빼앗기는 환경에 노출될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은 더 크고 더 밝은 스크린을 원할 것이다. 그러면 빛의 과잉을 시민의 공간과 조화롭게 배치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실제로 서울시가 자유표시구역의 '과도한 크기경쟁'과 도시경관 훼손우려를 이유로 관리기준을 손보려는 행정예고를 발표했다. 빛의 질주가 도시의 피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관리는 꼭 필요하다.

빛의 크기와 광도 같은 '형식'만 관리돼야 하는 건 아니다. 빛의 '내용'도 중요하다. 광화문과 같은 상징적인 공간에서는 공공콘텐츠가 우선권을 행사해야 한다. 국가행사나 시민의 안전과 관련된 공지가 우선 송출권을 가져야 한다. 또한 디지털 스크린은 정치적 중립성과 투명성을 지켜야 한다. 광화문의 벽이 전광판으로 바뀌는 현상은 우리 시대의 자연스러운 진화지만 결국 도시의 존재방식이 바뀌는 사건이기도 하다. 지금은 빛이 도시를 비추지만 머지않아 도시는 빛에 지배될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