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경영권 분쟁이 늘어날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2.10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최근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가히 '경영권 분쟁의 전성시대'다. 기업 뉴스에서 관련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과거 분쟁이 재벌가의 '진흙탕 싸움'이나 감정적 대립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고도로 설계된 자본의 논리와 주주 행동주의가 결합한 구조적 전환점에 서 있다. '봉건적 지배'와 '자본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은 현재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경영권 분쟁과 주주 행동주의가 가장 뜨거운 나라 중 하나다. 단순히 체감상 그런 것이 아니라, 글로벌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연구소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Diligent Market Intelligenc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주주 행동주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 순위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워낙 자본시장이 크고 행동주의 펀드의 본고장이라 압도적 1위다. 일본은 정부 주도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한국보다 먼저 시작되어 현재 분쟁이 정점을 찍고 있다. 한국은 2022년 이후 분쟁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유럽 국가(영국, 독일 등)를 제치고 아시아의 '분쟁 핫스팟'으로 부상했다.

2020년에 10곳에 불과했던 행동주의 대상 기업은 2025년 90여 곳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상장사 경영권 분쟁 건수 또한 317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체 분쟁의 약 90% 이상이 중소·중견기업에서 발생했으며, 대주주 지분율이 20%대인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 되었다. 과거엔 '엘리엇' 같은 거대 글로벌 펀드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국내 토종 펀드와 소액주주 연합의 활동이 보편화되었다. 결국 2025년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경영권은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완전히 뿌리내린 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딜리전트는 한국의 '지배구조(Governance)'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이사회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을 소액주주 연대가 매우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독특한 시장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기관 투자자와 결합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할 거라 분석했다. 결국 딜리전트 보고서는 한국 시장이 이제 '대주주 마음대로 경영할 수 없는 시장'으로 변했음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신호탄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타깃이 될 위험이 상시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전 우리나라 경영권 분쟁은 집안싸움(가족 간 갈등)인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성격이 변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지배구조가 불투명해서 주가가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되어 있다"며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한다. 이들은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사회 진입이나 배당 확대를 요구하며 경영권을 압박한다.

이제 시장은 더 이상 대주주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외부 세력의 공격을 '경영권 침탈'로 규정하고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 통했으나, 지금의 소액주주들은 다르다. 이제 분쟁의 핵심 키워드는 '가족의 안위'가 아닌 '주주가치 제고'다. 이에 캐스팅보트를 쥔 행동주의 펀드들은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를 요구하며 소액주주들을 우군으로 포섭한다. 국민연금 같은 기관 투자자들 역시 ESG 경영을 근거로 더 이상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의 급증은 단기적으로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소모적인 법적 공방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단순히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는 과정으로 치부하기엔 그 파장이 훨씬 깊고 복잡하다.

경영권 분쟁의 가장 충격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고려아연 사태'와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공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2024년 말부터 2026년 2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려아연 분쟁은 한국 M&A 역사상 가장 길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75년간 이어온 동업 관계가 사모펀드와 연대한 적대적 공격으로 이토록 처절하게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 큰 파장을 안겼다. 과거에는 사모펀드가 주로 경영이 어려운 기업을 샀다면, 이번엔 세계 1위 제련 기술을 가진 초우량 기업을 적대적으로 공개매수하겠다고 사모펀드(MBK)가 전격 등장한 것이다. MBK와 같은 대형 PEF는 철저히 수익을 좇는다. 이는 "한국의 어떤 우량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가장 치열했던 이 전쟁은 결국 현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는 형국이지만, MBK와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아 '불편한 동거'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 와중에 이달 초 영풍·MBK파트너스는 미 의회에 로비 활동을 하기 위해 현지 대형 로펌을 로비스트로 신규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아연 사태는 자본의 수익 추구가 국가 핵심 기술 및 글로벌 공급망 안보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국가적 리스크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사모펀드의 거대 자본이 초우량 기업을 정조준하고, 분쟁의 무대가 미국 의회 로비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은 경영권 분쟁이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사적 영역이 아님을 시사한다.

또한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은 승자가 독배를 마실 수 있다는 '사법 리스크'의 무서운 선례를 남겼다.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려 하자, 카카오가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앞세워 참전했다. 카카오가 승리하는 듯했으나,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로 최고 경영진이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경영권을 뺏으려다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섬찟한 교훈을 주었다. 결국 경영권은 카카오가 가져갔으며, 하이브는 인수를 중단하며 실익을 챙기는 선에서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토종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는 단순히 돈을 대는 역할을 넘어, 전쟁의 도화선을 당기고(트리거), 판을 짜는(설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단 1%대의 지분으로 SM의 지배구조 문제를 정조준하며 이 모든 사태를 시작한 것이다. 카카오 측은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사모펀드와 손잡고 수천억 원을 동원하여 장내 매수를 통해 SM 주가를 공개매수가 이상으로 상승시켰다는 혐의로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자본시장법 위반혐의로 기소되며 중대한 사법 리스크에 노출된 것이다.

SM 사례는 사모펀드가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자본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방어 기제다.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는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적 방패가 존재하지만, 한국은 오직 '지분(자금력)'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자본 집약적 구조에 갇혀 있다. 이는 불필요한 자금 소모와 소모적인 법적 공방을 야기한다.

결국, 경영권 분쟁의 일상화는 우리에게 거대한 숙제를 던지고 있다. 단순히 "대주주 마음대로 경영할 수 없는 시장"이 된 것을 넘어, "어떻게 국익과 기업의 영속성을 동시에 지킬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밸류업 정책과 병행하여 적대적 자본으로부터 핵심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책을 고민해야 하며, 기업은 폐쇄적인 성벽을 쌓는 대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주주와 소통하는 선진화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경영권 분쟁은 이제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 자본시장의 새로운 '뉴 노멀(New Normal)'이다. 지배구조의 허점을 파고드는 거대 자본의 파고 속에서, 우리 기업이 국익을 지키고 영속하기 위한 유일한 방패는 폐쇄적인 성벽이 아니라 시장과 주주가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한 경영'과 '압도적인 주주 가치'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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