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용시장이 빠르게 '양극단 구조'로 치닫고 있다. 고신용자와 저신용자만 남고, 그 사이를 잇는 중신용 구간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신용등급이 두 단계만 떨어져도 금리가 두 배로 뛰는 현실은 금융이 더 이상 위험을 제대로 가격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일시적 왜곡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결과라는 점이다. 은행권 금리는 고신용자의 경우 약 5% 수준인 반면, 중신용자는 최대 10%대, 저신용자는 13% 이상으로 단층화돼 있다. 대출 수요는 중저신용층이 더 많지만 이들은 더 비싼 비용을 치르거나 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총량 규제 중심의 감독체계는 은행이 위험이 낮은 고신용자 대출로 쏠리게 만들었고, 그만큼 중저신용자는 배제됐다. 중금리 대출 확대를 약속하고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도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기울며 설립 취지를 훼손했다.
서민금융을 담당해야 할 2금융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은 비과세 혜택과 규제 완화 속에 급성장했지만, 중저신용자 지원보다 부동산 금융에 치중했다. 자산은 '공룡화'됐지만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 급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신용자에게 저금리로 빌려줘야 한다는 선의의 주장은 해법이 되지 못한다. 대출은 줄고 우량 차주에게 붙는 금리만 높아지는 '역차별'은 예고된 결과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업체들이 조달금리와 역전된 신용대출을 줄이고 담보대출 위주로 전환해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몬 역설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실질적 규율로 명문화해 금융회사 평가와 인허가, 자본 규제 등과 연동할 수 있을 것이다. 서민금융기관은 부동산 금융이 아닌 중저신용자 포용에 다시 초점을 맞추도록 역할을 재정립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비과세와 같은 정책적 특혜는 '포용금융'이라는 본래 목적과 연계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독일 슈파르카세, 일본 지방은행처럼 지역 기반 관계형 금융으로 중저신용자를 끌어안으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모델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 사례다. 대출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는 이동성이 사라진 사회다. 더 이상 신용시장의 구조 전환을 미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