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동일인(同一人) 지정이 필요한가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5.12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29일 '2026년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하며 쿠팡의 '동일인(同一人)'을 법인에서 김범석 쿠팡Inc 의장 개인으로 변경했다. 언뜻 행정 분류상의 기술적 변경처럼 보이지만, 이 결정은 한국 경제규제의 오랜 철학적 논쟁과 글로벌 자본시장의 충돌, 그리고 한미 통상관계라는 복잡한 방정식을 한꺼번에 건드리는 사건이다. 아울러 공정위는 김준기 DB그룹 회장,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등 동일인 세 명을 계열사 허위 제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상 '사실상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우리가 흔히 '총수'라 부르는 그 존재다.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과 함께 대기업집단 제도가 도입되면서 탄생한 이 제도는, 재벌 오너가 지분 구조와 관계없이 계열사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한국적 현실에 맞춰 설계되었다. 공정위는 매년 5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10조 원 이상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나누어 지정한다. 동일인은 이 분류의 핵심 기준점이다. 동일인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계열사의 범위가 정해지고,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친족 주식 공시 의무, 내부거래 공시 의무 등 촘촘한 규제망이 가동된다.

동일인 제도의 탄생 배경에는 시대적 필연성이 있었다. 1960~70년대 압축 성장 과정에서 탄생한 재벌은, 적은 지분으로도 수십 개 계열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구축하고 법적 책임은 회피하면서 경영 지배력은 온전히 누렸다. 공정위는 이 허점을 막기 위해 동일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국가가 직접 지정하고, 그에게 공시 의무와 형사 책임까지 귀속시키는 방식이다. 결국 동일인 제도의 핵심은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강제하는 장치다. 지배하는 자가 책임도 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네 가지 핵심 의무와 규제가 수반된다. 첫째, 매년 계열사 범위·친족 현황 등을 공정위에 신고해야 하며 허위 제출 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둘째, 4촌 이내 혈족까지 친족의 주식 거래 내역이 공시 대상이 된다. 셋째,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다. 넷째, 계열사 간 50억 원 이상 내부거래는 이사회 의결과 공시가 의무화된다. 동일인 지정은 단지 명칭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과 범위가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사건이다.

이 대목에서 동일인 제도의 독창성, 혹은 고립성이 부각된다. 세계 어디를 봐도 특정 기업집단의 지배자를 정부가 직접 지정하고, 그의 친족 4촌까지의 주식 거래를 공시하도록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 재벌 규제의 정수인 동일인 제도는, 동시에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도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을 운용하지만, 그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행위 규제가 핵심이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 합병을 통한 경쟁 제한 행위를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방식이다. 기업을 지배하는 특정인을 국가가 사전에 확정하고 규제하는 한국식 규제는 선진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현행 제도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의 불투명성을 강조하는 신호로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이 이례적인 이유는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있다. 우선 그는 한국 국적자가 아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창업한 쿠팡Inc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미국 법인이다.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광범위한 공시 의무와 지배구조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기업의 창업자를 한국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은, 한국 규제의 역외 적용이라는 복잡한 법적 쟁점을 내포한다. 공정위는 2021년 쿠팡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할 때부터 이 딜레마를 알고 있었다. 당시 공정위는 외국계 기업의 사례에 준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이후 2024년 5월에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친족 경영 참여 등 사익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요건을 명문화했다. 사실상 쿠팡을 위한 조항이었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3370만 명에 이르는 고객 정보가 유출된 사건으로 쿠팡은 국회 청문회에 소환되었지만, 김 의장은 수차례 불출석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악화된 가운데 공정위가 현장 점검에 착수했고, 결정적 단서를 발견했다. 김 의장의 동생이 쿠팡 내부에서 부사장급 직위로 물류·배송 정책 회의를 수백 차례 주재하고, 주간 실적을 점검하는 등 실질적 경영 참여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공정위는 이를 근거로 법인 동일인 지정의 예외 요건인 '친족의 경영 참여 부재'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동일인이 법인에서 자연인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을 단순히 국내 규제 이슈로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이미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들을 예의 주시해 왔다. 지난 4월에는 미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이 주미대사에게 쿠팡 같은 미국 기업 차별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쿠팡은 동일인 지정에 즉각 반발하며 행정소송으로 다투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쿠팡 이슈가 한미 안보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며, 핵추진잠수함 협력 등 원자력 협상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인정했다. 한 기업의 공정위 행정 결정이 외교·안보 의제와 맞닿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현재 쿠팡 이사회에는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자,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겸 엑스박스 CEO 등 미국 유력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이들까지 '동일인 관련자'로 분류돼 각종 정보보고 의무를 지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정부는 '국적에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입장이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에서 이 논리는 옳다. 그러나 법의 원칙이 옳다는 것과, 그 법 자체가 현실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외국인 창업자를 한국 공정거래법상 총수로 지정하는 행위가 국제 통상 규범과 충돌하는지, 역외 적용의 한계를 어디서 그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동일인 제도는 한국 경제의 특수한 성장 과정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규제 장치다. 재벌 총수의 무책임한 경영권 행사를 견제하고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데 40년 가까이 일정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 환경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제도의 설계 근거가 된 상황이 변하면, 제도도 그에 따라 진화해야 한다.

이번 김 의장 동일인 지정은 세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첫째, 외국인이 창업한 뉴욕증시 상장 기업에 한국식 재벌 총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한가. 둘째, 자연인 개인이 아니라 핵심 법인을 중심으로 규제 체계를 재편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셋째, 규제의 목적이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비자 보호에 있다면, 동일인 지정이라는 수단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쿠팡은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미국의 통상 압박도 계속될 것이다. 공정위는 '엄격한 법 집행'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이 세 가지 힘이 부딪히는 교차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제도적 성찰이다.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려면,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필수적이다. 규제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40년 된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정밀하게 재설계해, 규제의 목적은 달성하되 불필요한 마찰은 최소화하라는 요구다. 동일인 제도의 미래는, 결국 한국 경제가 어떤 방식으로 글로벌 자본과 공존할 것인가를 묻는 더 큰 질문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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