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학기술 R&D, 급할수록 돌아가야

박건희 기자
2026.07.23 04:00

최근 1년간 국내 과학기술계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빨리빨리'다.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국정기조와 맞물려 생겨난 현상이다.

R&D(연구·개발)는 목표 측면에서 보면 속도전이 필수다. AI(인공지능) 분야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양상이 변한다. 미국이 신형 모델을 내놓으면 고가의 자원을 서둘러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다가도 '키미 K3' 같은 '가성비' 중국산 AI가 나오면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주목받는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다. 미국·중국 주도의 AI 시장에서 한국은 흐름을 면밀히 살펴가며 필요한 자원과 기술을 빠르게 판단해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의 사업을 만들고 추진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속도전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작지만 꼭 필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어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야심차게 출범한 'K문샷 프로젝트'가 그렇다. K문샷은 과학기술에 AI를 투입해 2035년까지 원자력·양자·신약 등 전략기술 분야에서 혁신적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다. 미국이 '제네시스 미션'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계획한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규정이 미흡했다. 미션을 총괄할 PD(총괄관리자)를 선발했지만 이들을 공식 고용할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뒤늦게 관련절차에 착수했다. 민간 출신 전문가를 기용했지만 본 소속기관과 이해충돌 가능성을 이유로 자진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AI 전환을 이끌기 위해 설립한 국가과학AI연구센터는 지난 5월 일찍이 출범 소식을 알렸지만 규정정비로 인해 운영단장이 센터장에 공식 임명되는 시기는 오는 8월이다.

지붕 먼저 올리고 벽돌을 쌓는 모습이 연출된 것은 다름 아닌 '속도압박'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하게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다. 경각심 없이는 앞으로도 성긴 구조의 R&D사업이 줄줄이 양산될 수 있다.

올 하반기는 과기정통부에 여러모로 중요한 시기다. 차세대 SMR(소형모듈원자로) 전략과 실패자산화제도를 마련하고 지연됐던 출연연 공통행정 통합도 추진한다. 연내 '모두의 AI' 서비스도 개시한다. 다만 무조건 빠른 출발이 답은 아니다. 연구현장과 행정에서 촘촘한 준비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 시간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

박건희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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