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 공무원 A씨는 최근 자신이 공무원이 아니라 카드회사 영업맨이 된 기분이다. A씨는 주위 지인들을 동원해 간신히 목표 할당을 채웠다. A씨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남구청 직원들에게 때 아니게 떨어진 '미션'은 다름 아닌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동의한다는 주민의견 서명서다. 공무원의 중립성을 독려해야 할 구청이 직원들에게 할당분을 지시, 특정사업에 대한 반대의견 수를 늘림으로써 주민의견을 왜곡하고 있는 것.
A씨는 "공무원이 혼자서 할당을 다 채우진 못하니 주위 지인들에게 몇 장씩 좀 동의서를 써달라고 부탁해 할당을 채우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할당을 채우기 위해 지난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고 밝혔다.
29일 강남구 등에 따르면 문제의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 열람공고에 대한 주민의견 제출 서명부'는 삼성동과 대치동 일대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대하는데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전부지 등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발생할 공공기여금이 강남구에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남구는 향후 서울시가 국제교류복합지구계획을 강행하면 법정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강남구가 구청 직원 1인당 서명 할당까지 배분, 서울시의 개발계획에 반대하는 수를 인위적으로 늘림에 따라 주민 의견을 조작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강남구처럼 위에서 할당이 내려오면 인사 상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당을 채우게 된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29일까지 이렇게 구민 의견을 모아 오는 30일 서울시에 제출할 계획이다. 강남 주민대책위원회도 서명자수를 늘리기 위해 학교와 성당에서까지 단체 서명을 받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단체 서명'의 유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주말에 (수서동) 성당에 갔더니 1층 로비 주보와 현금 봉투를 나눠주는 테이블에 현수막이 붙어있고 그 옆에서 종합무역센터 지구단위계획을 잠실운동장까지 확대하는데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서명을 주일 교중 미사 시간에 성당 안에서 받느냐고 항의했더니 주임 신부님이 허락한 일이라며 꿈쩍도 않았다. 과연 주민공람공고 의견을 주일날 성당에 와서 집단서명을 받아가도 유효한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강남구 측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민서명 자체에 대한 홍보를 독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명자수에 대한 할당을 제시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강남구 관계자는 "현재까지 반대서명서를 제출한 인원이 '목표치'를 넘어 38만50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일정 수준의 반대서명서 목표치를 책정하고 달성을 독려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편 강남주민대책위원회는 중학교에서도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들에게 교문 앞에서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계획에 대한 반대 서명서를 작성하도록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