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올라오시면 안됩니다. 1층에서 기다려주세요."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회 현장은 비밀작전을 방불케 했다. 서울시향 직원들은 이사회가 열린 4층 회의실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에게 1층으로 내려가달라 요구했다. 이사회가 끝난 뒤 논의된 내용을 파악하려 했던 기자가 그대로 있겠다 하자, 직원은 다른 기자들과 합의된 사항이라며 재차 내려가 달라고 요구했다. 1층에 내려갔다 다시 4층에 올라오자 다른 서울시향 직원 2명이 있었다. 기자가 회의실 입구로 가려하자 직원들은 제지했다.
이날 서울시향 이사회는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정명훈 예술감독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지난 1월 서울시 감사 결과 정 감독 가족이 항공권을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등 계약사항을 놓고 논란이 불거진데다, 정 감독 부인인 구모씨(67)에 대한 경찰수사가 최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재계약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시향 이사회가 열린 세종문화회관에는 30여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서울시향 이사회는 시작 전부터 졸속 논란을 겪었다. 통상 7일 전엔 이사회 안건과 일정에 대해 이사들에게 통보키로 돼 있지만, 서울시향은 크리스마스 연휴 시작인 24일 저녁 6시가 돼서야 이사들에게 메일을 보내 정 감독 재계약 안건 관련 세부내용 등을 알렸다. 4일 전 통보하는 바람에 이사들이 제대로 검토할 시간도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3시간에 걸친 이사회가 끝난 뒤에도 정 감독의 재계약 안건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서울시향 측은 함구했다. 최흥식 서울시향 대표는 "재계약은 내용 등을 거친 뒤 내년 1월 중순 이후 재논의하기로 했다"며 "이사회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이사들도 "최 대표로 언론창구를 통일하기로 했다"며 말을 아꼈다.
서울시향은 시민 혈세가 들어가는 조직이다. 시민들은 정 감독에게 들어간 고액연봉과 항공료, 호텔비용 등이 합당한 것인지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서울시향은 통보 절차는 어기고, 재계약 내용은 비공개하며 졸속으로 추진해 여론의 비판을 스스로 사고 있다.
정 감독의 재계약 시점도 논란거리다. 서울시향 직원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 받았던 박현정 서울시향 전 대표가 혐의를 벗고, 정 감독 부인 구씨가 박 전 대표의 사퇴에 개입한 혐의로 수사 받는 등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게 됐다. 최 대표도 "정 감독 부인의 수사와 재계약이 100% 분리할 수 없으며, 상황을 보고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감독이 서울시 감사와 서울시의회 지적 등으로 문제가 드러난 이상, 서울시향도 재계약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마에스트로가 아닌, '서울시향 예술감독' 정명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