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문명고 사태는 '외부세력' 소행?

최민지 기자
2017.03.06 08:00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현수막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외부세력은 없습니다.”

지난 3일 학교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문명고국정교과서연구학교지정철회대책위원회(이하 문명고 대책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김태동 교장이 일부 언론을 통해 문명고 사태를 일명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규정하고 나서자 학부모들이 선을 그은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교원·시민단체들이 이번 사태에 함께 두 팔 걷어붙이고 피켓시위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문명고 반대집회의 주체가 ‘내부세력’인 것만은 분명하다. “연구학교를 신청한 우리가 급진(急進)” “국정교과서 오류는 7건”이라고 주장한 김 교장의 ‘황당 훈화’를 녹음해 본보에 알린 것도, 반대 교사의 보직을 해임한 학교 측의 불이익 조치를 기자에게 제보한 것도 모두 문명고 구성원이었다.

반대 집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명고 대책위는 학생들의 학업이 방해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경산오거리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한다. 국정교과서로 공부할 1학년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반발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명고 대책위 관계자는 “1학년에도 학생회가 구성되면 본격적으로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명백한 내부 여론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해야 하는 김 교장의 현실 인식이 안타깝다.

마음 아픈 것은 또 하나 있다. 이번 연구학교 지정 강행은 김 교장이 아닌 홍택정 이사장의 뜻일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연구학교 신청에 반대하다가 보직에서 해임된 최모 교사마저도 “김 교장은 원래 민주적인 사람이라서 이런 일을 저지를 분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홍 이사장이 쓴 글을 보면 추정은 확신으로 바뀐다. 홍 이사장은 일부 교직원에게 “민노총의 벽을 넘어 정의가 있는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국정교과서를 선택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홍 이사장이 ‘허허’라는 아이디로 고교 동창회 카페에 올린 글에는 “촛불들의 무법천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태극기를 들었다” “발광하는 촛불 세력” “우리는 순수한 태극기 의병” 등 탄핵 촛불집회를 폄훼 하는 말들이 가득하다.

사립학교 교장이 귀를 기울일 내부자는 학부모나 학생보다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사장 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립학교법에서 학사 개입을 금지하고 있는 대상은 학부모, 학생이 아닌 재단이사장이다. 김 교장이 학교 운영의 근간이 학생과 학부모라는 것을 잠시 잊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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