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시험에서 항상 100점을 받던 아이가 서술한 답을 보고 그동안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매번 낮은 점수를 받던 아이들도 나름 논리적이라는 점도 깨달았죠.”
최근 공개수업을 한 충북 음성 삼성중 교사의 말이다. 삼성중은 혁신학교 가운데 하나다. 올해 자유학년제를 도입했다. 학기 중 학생 참여형 수업과 체험활동을 하는 자유학기제를 두 학기로 늘렸고, 교사가 지식을 단순 전달하기보다 학생들 스스로 고민하고 참여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시험방식도 바꿨다. 지난해 2학기부터 일부 예체능 과목을 빼고 2~3학년은 객관식(선다형) 대신 서술·논술형으로 시험을 본다. ‘점수’라는 일차원적 잣대로 줄을 세우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개개인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려는 초기 단계의 창의교육을 시도한 셈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발달심리학 전문가인 토드 로즈는 저서 ‘평균의 종말’에서 “노르마(미국 여성의 평균적인 신체 치수를 바탕으로 만든 조각상)와 같은 평균적인 인간은 없다”며 “평균주의(averagarianism) 구조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획일주의·표준화로 상징되는 산업화시대에는 인간 개개인의 재능이나 장점이 묻혔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창의적 인재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혁신적인 교육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지금도 학습 내용과 방법·시기·속도·순서에 따라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강요받는다. 이런 평균적 수업을 못 따라가면 바로 ‘학습지체’ 꼬리표가 달린다. 초·중·고에서 혁신교육이 이뤄져도 입시와 결부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취업을 위해 대학에서 좋은 성적·학위를 받는 게 더 중요한 목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성적에 따른 차별과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학교 교육, 변화에 둔감한 대학, 정부 규제, 패자부활이 불가능한 시스템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교육개혁은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두 달 뒤 정부의 대입개편안이 나오지만, 국민이 원하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수능·학종 적정비율’ 등 지엽적인 논의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후 정권에서 또 교육개혁이라는 구호가 나올 여지를 남긴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13 지방선거 투표가 끝난 직후인 지난 14일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며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대입개편안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기고 뒷짐만 지고 있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곱씹어야 할 말이다.
혁신학교 확대 공약을 내건 진보 교육감들이 대승을 거둔 그날 밤 공교롭게도 얼굴 벌게지도록 술을 마신 김 장관의 모습이 정부세종청사 인근 식당에서 목격됐다. 차관과 실·국장도 자리를 같이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그동안 미뤘던 장관 만찬을 이날 하게 됐다고 했다.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취임 후 줄곧 교육 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인 김 장관의 이날 모습은 썩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