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로 지난 10년을 무대에 오르며 예술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더 멋진 공연을 하려면 결국 예술도 자본시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로 극단의 무명 배우가 설립한 벤처기업이 전 세계 30개국, 80개 도시를 누비며 'K공연'의 새로운 수출 역사를 쓰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1일 만난 프로젝션 맵핑 기반의 이머시브(Immersive·실감형) 콘텐츠 제작사 '브러쉬씨어터'의 이길준 대표 이야기다.
이 대표는 단순히 무대 위에 작품을 올리는 것을 넘어 공연예술이 산업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브러쉬씨어터는 올해 매출 100억원 돌파를 예상하며, 최근 약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까지 성공해 IPO(기업공개)를 향한 청신호를 켰다.
브러쉬씨어터의 핵심 경쟁력은 역설적이게도 '가벼움'이다. 대표작 '두들팝'(Doodle POP), '폴리팝'(Poly POP) 등은 프로젝션 맵핑, 오토메이션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지만, 무대 장치는 여행용 캐리어 하나에 담길 만큼 간소화했다.
이 대표는 "우리 공연은 거창한 화물 운송이 필요 없다. 비행기 수하물로 무대 세트를 싣고 나가 현지에서 바로 공연할 수 있는 '기동성'이 가장 큰 무기"라고 설명했다. 이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 적중했다.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에딘버러 페스티벌 최고의 쇼'로 꼽히는 등 해외에서만 1000회 이상의 공연을 올렸다.
내년에는 미국 20개 도시 투어를 비롯해 프랑스, 호주, 싱가포르 등 총 11개국 진출이 확정됐으며, 상반기 해외 수출 계약액만 이미 30억원을 넘어섰다. 이 대표는 "내년에는 올해의 2배 수준인 매출 250억원, 영업이익률 20%를 목표로 세웠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바라보는 다음 격전지는 '인바운드'(방한 외국인) 시장이다. 그는 "트립닷컴 등 글로벌 여행 플랫폼을 보면 한국 관광 상품은 경복궁, 남이섬 같은 공공재 관람에 집중돼 있다"며 "방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야간 관광이나 상업 공연 콘텐츠가 아직 충분히 다양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 관객의 60~70%가 외국인 관광객인 반면, 한국 공연 시장은 내국인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인바운드 시장의 성장 여지가 크다는 판단이다.
최근 브러쉬씨어터는 서울 홍대 인근에 여성 전용 공연을 오픈했다. 아이돌, 댄서들의 퍼포먼스를 내세운 이 공연은 관객의 98%가 외국인일 정도로 반응이 좋다.
자체 IP(지식재산권) 개발뿐만 아니라, 검증된 글로벌 IP를 재가공하는 '2차 IP 사업'도 브러쉬씨어터의 핵심 성장 동력이다. 브러쉬씨어터는 최근 전 세계 최초로 영국 BBC의 인기 애니메이션 '넘버블록스'(Numberblocks)의 뮤지컬 라이선스를 확보해 전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대표는 "해리포터 같은 글로벌 IP를 가져와 한국의 기술력으로 더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 다시 해외로 내보내는 '역수출'이 가능하다"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큼, 이미 성공한 IP를 2차 세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또한 승산 높은 비즈니스"라고 강조했다.
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경기콘텐츠진흥원(이하 경콘진)의 전방위적 지원이 있었다. 브러쉬씨어터는 경콘진의 '문화기술 콘텐츠 유통지원 사업'을 통해 대표작 '폴리팝'을 노원어린이극장에서 장기 공연하며 수도권 관객 접점을 넓혔다.
이 대표는 "이번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 과정에서도 경콘진의 네트워킹과 지원 사업이 결정적인 '인증 마크' 역할을 했다"면서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부터 투자 유치까지, 기업 성장의 변곡점마다 경콘진의 도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끝으로 "한국은 KPOP, 드라마 등 원석 같은 콘텐츠가 넘쳐나는 나라"라면서 "브러쉬씨어터는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 우리 콘텐츠가 전 세계로 나가고(Outbound), 동시에 전 세계인이 한국에 들어와(Inbound) 즐기는 글로벌 공연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