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AI(인공지능) 열풍'이 미술에도 불어닥치며 국내 미술계의 고민이 깊어진다. 장기적 관점에서 미술시장 확대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한편 기성작가들의 설 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비판도 커진다.
서울 종로구의 한 화랑 관계자는 13일 "하반기 AI가 그린 작품의 첫 판매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AI를 도구로 사용하거나 AI가 제작한 조각·회화 등의 거래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국제무대에서는 이미 'AI 미술품'들의 거액 판매·낙찰이 드물지 않다. 지난 3월에 열린 아시아 최대 미술전시회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AI 아티스트 '보토'의 작품 20점이 점당 최소 1800만원에 팔려나갔으며 대형 경매사 크리스티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판매한 AI 미술품의 총거래가는 100만달러(약 15억원)를 넘어섰다. 이달에 예정된 뉴욕 '필립스 경매'에도 AI 미술품이 대거 출품될 예정이다.
AI 미술가들 사이에서 스타 탄생도 잇따른다. 오직 AI만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레픽 아나돌은 대표작 '기계 환각'을 4억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한 인기 작가다. 인간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다'는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세계 3대 경매와 주요 아트페어를 돌며 작품활동을 펼친다. 아이다의 대표작 '앨런 튜링의 초상'은 15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으며 현재까지 AI 미술품 중 1위다. 미술계에선 이미 AI 미술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4조8000억원 규모였던 AI 예술시장은 2032년 60조4000억원으로 12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대형 미술경매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아직 AI 미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지만 세계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라며 "해외에서는 이미 AI 전시회, AI 전문화랑 등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기성작가들의 반발은 숙제다. AI는 작업 때 기존 미술 데이터를 학습에 이용하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훔친 작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미국 등 주요국 미술시장에는 'AI가 생성한 작품'이라는 표시를 삽입해야 하는 규정이 있지만 국내에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점도 논란을 키운다. 한 미술단체 관계자는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AI 창작물은 인간의 작품을 훔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