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제' 있어도 못 쓴다…기업 3곳 중 1곳 '이용자 0명'

황예림 기자
2026.07.09 09:17
인구 전문 싱크탱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은 9일 '2026 인구 위기 대응 우수 기업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사진=Gemini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 3곳 중 1곳은 이용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었다. 은행·보험업도 출산·양육 지원에 앞장서 있었다.

인구 전문 싱크탱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은 9일 '2026 인구 위기 대응 우수 기업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한미연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기업 중 자산 규모 5조 이상(상위), 1조 이상 5조 미만(중위), 1조 이하(하위) 3개 구간에서 각각 100개사씩, 총 300개사를 대상으로 인구 위기 대응 수준을 평가했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상장사가 사업보고서 부록에 공시하는 육아휴직 및 유연근무 실제 이용 데이터(육아휴직 2000개사, 유연근무 1877개사)를 들여다봤다. 제도의 서류상 존재 여부와 실제 활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난해부터 상장사의 관련 공시가 의무화되면서 시행 2년차인 올해부터 기업별 실명 데이터를 근거로 한 전수 분석이 가능해졌다.

조사 결과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 중 657개사(35%)는 실제 이용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유연근무제는 고정된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 장소에서 벗어나, 근로자와 기업이 상황에 맞게 근무 시간과 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조정하는 제도다. 육아나 부모·가족 돌봄이 필요할 때 일과 가정을 양립하게 해주는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육아휴직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대상자 전원이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기업은 341개사(17%)였던 반면, 대상자가 있었음에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기업은 441개사(22%)에 달했다. 상당수 기업이 제도를 아예 안 쓰거나 전부 다 쓰는 양극단에 몰려 있는 것이다. 같은 제도를 갖추고도 활용 정도가 크게 갈리는 건 제도의 존재 여부보다 조직 문화가 실제 활용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300개 기업의 평균 평가 점수는 100점 만점에 51.1점이었다. 종합 순위 1위를 기록한 기업은 포스코인터내셔널(82.3점)이었다. 국민은행·KB국민카드·케이티앤지는 2년 연속 상위권을 지켰다.

평가 점수 상위 20개 기업에는 자산 규모가 중위권인 롯데칠성음료·삼성SDS 등과 하위권인 콜마비앤에이치·한미글로벌 등도 이름을 올렸다. 기업의 의지에 따라 규모가 작더라도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전년에도 평가 대상이었던 197개 기업 중 SK증권(291위→53위), 롯데하이마트(244위→11위), 호텔롯데(226위→5위) 등은 큰 폭의 순위 상승세를 보였다.

산업별로는 출산·양육 지원 부문에서 압도적으로 앞선 '은행 및 보험업'(59.5점)이 평가 점수 평균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운수 및 창고업'(44.5점)은 현장 근무 중심의 구조적 한계로 최하위에 그쳤다.

세부 항목별로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출산/양육 단계 지원'(각각 64.5점, 64.1점)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반면, 남성 배우자 의무 육아휴직 등 남성 육아 참여를 포함하는 '배우자 지원' 영역(21.4점)은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었다.

300개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기업(육아휴직 286개사, 유연근무 281개사)을 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육아휴직의 경우 평가 점수가 높은 기업일수록 실제 활용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점수 상위 10%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평균 48.62%로, 하위 10% 기업 평균인 25.80%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유연근무제의 경우 평가 점수 상위 33% 기업들은 하위 기업들보다 직원 1000명당 유연근무 사용자 수가 두 배 이상 많았다. 상위 33% 기업들은 1000명당 580.3명이 유연근무에 들어간 반면 하위 기업들은 272.4명에 그쳤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최근 합계출산율이 반등하며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안도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 확인했듯 기업 현장은 여전히 참담하다"며 "제도를 도입해도 정작 필요한 직원이 쓸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과 가정 중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매일의 근무 방식 자체를 바꿔주는 유연근무제"라며 "유연근무제부터 일터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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