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회장님, 고통스러우시죠?"

이상배 기자
2015.01.05 06:32

[the300] 자신이 소유한 것에 객관적인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 매기는 '소유효과'

2009년 7월1일, 충남 당진 아산만 소재 동부제철 공장. 기자의 눈에 비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의 40년 숙원사업이었던 전기로 공장의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기자간담회 자리. 김 회장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여느 재계 2∼3세들과는 다른 '창업 1세대'로서의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당시 완공된 전기로 공장은 단일 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였다. 총 8700억원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빚이 크게 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년부턴 부채비율이 확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희망섞인 예상은 빗나갔다. 동부그룹의 부채비율은 이후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반도체 계열사인 동부하이텍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져나갔다. 동부제철은 전기요금도 못 낼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다 끝내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갔다. 결국 김 회장의 40년 숙원이었던 당진 전기로 공장은 지난달 가동이 중단됐다.

동부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난달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회사 동부발전당진을 팔아 위기를 넘겨보려 했지만 이마저 실패했다. 동부익스프레스는 팔려나갔고, 동부하이텍과 동부LED은 매각 대상이 됐다. 김 회장은 최근 신년사에서 "그룹의 철강, 건설, 물류 부문이 완전히 와해됐다"며 참담한 심경을 털어놨다.

김 회장이 외가에서 받은 24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그의 나이 25세. 이후 동부그룹을 한때 재계서열 10위권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40여년간 산전수전 다 겪은 김 회장이 어쩌다 이 상황까지 오게 됐을까?

동부그룹은 구조조정에서 '실기'(失期)를 거듭했다. 계열사 매각 조건을 놓고도 재인수를 위한 '우선매수권'을 요구하거나 '헐값매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높은 가격을 고수했다. 계열사 매각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상황이 점점 악화된 이유다.

심리학 개념 가운데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라는 게 있다.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 객관적인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경향을 말한다. 대개 '애착'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학교 행동경제학과의 댄 애리얼리(Dan Ariely) 교수가 ‘소유효과’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애리얼리 교수는 일부 학생들에게 평소 구하기 힘든 스포츠 경기 입장권을 나눠줬다. 그리곤 입장권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입장권을 사기 위해 얼마까지 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학생들이 제시한 가격은 평균 100달러 정도였다.

반대로 애리얼리 교수는 입장권을 받은 학생들에게 "얼마면 입장권을 팔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학생들이 제시한 평균 가격은 240달러에 달했다. 입장권을 못 받은 학생들이 제시한 평균 가격의 2배가 넘는 가격이다. 한낱 스포츠 경기 입장권도 이럴진데 기업이라면 오죽할까.

창업자인 김 회장에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구고 키워낸 계열사들을 내다파는 건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울 터다. 그럼에도 김 회장에게 좀 더 빠르고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 건 아직도 그에겐 지켜야 할 자식들이 많이 남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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