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해킹팀' 프로그램을 직접 구매하고 사용한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사흘이 지났다. 곧바로 유언 전문이 공개되고 경찰이 '단순 변사'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의혹은 확산되고 있다. 쟁점과 의혹을 짚어봤다.
◇임씨, 왜 자살했나?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임씨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법한 대북 정보수집'으로만 프로그램이 사용됐다면 임씨의 극단적 선택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에서 업무 담당자로서 갖게되는 '부담'만으로 임씨 자살을 설명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많다.
사건 초반에는 임씨가 자신이 구매한 프로그램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받자 압박감에 목숨을 끊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임씨가 자살한 지 하루 만에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직원일동 명의의 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 자료에서 임씨의 유서내용을 임의로 해석했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는 임씨 주장에 대해 국정원은 "책임을 자기가 안고 가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살 동기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이 임의로 자살의 동기를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임씨가 숨지기 전 수일에 걸쳐 국정원 내부의 고강도 감찰을 받았고 숨진 당일에도 감찰이 예정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살 동기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임씨의 가족들이 불과 5시간 연락두절에 임씨를 실종신고 하고 경찰이 곧바로 수색에 나서 소방대원들이 1시간30분만에 임씨를 발견했다는 경찰 발표는 통상적인 실종사건의 수사속도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건 직후 공개된 유서, 이어진 국정원의 대응, 경찰의 일사천리 수사는 임씨의 사망 경위에 대한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내국인 사찰 아닌데 파일 왜 삭제했나…증거 인멸?
임씨가 자살 직전 관련 파일을 삭제한 사실도 의문을 키운다. 임씨는 유서에서"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업무에 대한 욕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이지만 국정원에서 20년간 사이버안보분야 전문가로 일해온 요원이 실수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욱이 자신의 본연의 업무로서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대테러, 대북공작과 관련된 자료를 삭제했다는 주장은 의구심을 낳는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임씨가 나흘 동안 밤새워 일하며 공황상태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임씨는 지난 4월 타 부서로 옮긴 상태에서도 이번 논란이 불거진 후 나흘 밤잠을 새며 과거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직접 해킹 대상을 선정하지 않았지만 임씨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던 중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국회 정보위원회에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자 서둘러 임씨가 문제가 될 만한 증거인멸 시도를 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검찰이 국정원 자료 삭제에 대해 즉각수사와 압수수색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국정원의 은폐와 증거인멸을 방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삭제된 파일' 복구 가능?…진상규명 '미궁' 빠질 가능성도
결국 임씨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열쇠가 될 '삭제된 파일'이 복구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복구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여야 이견이 뚜렷하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디지털포렌식 기법으로 삭제된 자료를 이번주 안에 100% 복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디가우저(자기장을 활용해 하드디스크 등에 저장된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는 장치)를 활용해 저장매체에 물리적 변화를 가했다면 100%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게 보안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이철우 정보위 여당 간사는 "임씨가 완전히 복원 못 하도록 삭제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보위 현장방문 때 노출되지 않게 사본만 삭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국정원이 선별적으로 유리한 내용만 복원하고도 100% 복원했다고 발표할 경우 이를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한 의혹 해소는 어려울 전망이다.
야당은 어느 때보다도 진상규명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21일 국정원에 해킹프로그램 로그파일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정원 해체하라는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국정원이 스스로 해킹팀과 국정원 직원 메일에서 드러난 카카오톡 해킹 요청과 안랩 분석 요청,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해킹 요청 등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지 않는다면 국정원 해킹사건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