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여야, 평화헌법 개정 반대로 긴장감…TPP 논의는 계속
#. 약 500m의 인간띠가 줄지어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부터 힐을 신은 젊은 여성까지 구성은 다양했다. 목탁을 들고 나온 승려 무리도 보였다. 이들 손에 든 현수막과 종이에는 '안보법(安保法)은 전쟁법(戰爭法)'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난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 치요다구 나가타초 국회의사당 맞은편 의원회관 건물 앞의 풍경이었다.
통역을 담당한 김원희씨(39)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일본인의 특성을 감안하면 시위 열기는 뜨거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양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30도를 오르내리면서 끈적끈적한 날씨가 계속 됐지만 시위대의 수는 더 늘은 듯 했다.
3일째인 24일에는 도로 한 쪽으로 행진하는 행렬도 눈에 띄었다. 눈짐작으로 500여명은 모인 듯했다. 후에 보도를 보니 이날 수천명이 모였다고 했다.
도쿄 시내를 활동반경으로 하는 택시기사는 "안보법안을 반대하는 시위"라며 "시위대 뿐 아니라 일본 국회에서도 지금 가장 뜨거운 이슈"라고 설명했다.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법안은 헌법9조 평화헌법의 다른 이름이다.
이날 일본 국회 중의원에선 농림수산위원회가 열렸다. 본회의장과 같은 건물에 18개 위원실(상임위 회의장)이 있는데 그 중 17위원실에서 회의가 개최됐다. 미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앞두고 내각 대표와 야당 의원 간에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자 일본의 차세대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부 책임관도 이날 회의장에 나와 내각 측 입장을 대변했다.
이토 신타로 자민당 중의원 보좌진인 쿠마가이 마리히로 씨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취약해질 농업부분을 어떻게 보호할 지 논의하는 자리"라며 "농업 보호는 지식재산권(복제약 특허 문제), 자동차 관세 책정과 함께 TPP의 주요 쟁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나 '성완종 리스트', 최근의 '국회법 거부권' 정국까지 갈등이 발생하면 전체가 파행으로 치닫는 우리 국회와 비교된다. 자민당에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이 '안보법안'을 사생결단으로 막으면서도 경제 관련 현안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은 여의도에서 찾기 힘든 광경이다.
일본의 경우 출범 후 줄곧 70%대 지지율을 상회하던 2기 아베 내각이 2013년 말 첫 40%대 지지율로 하락했을 때도 법안 논의는 계속됐다. 그해 12월에 끝난 임시국회에서 법안처리율은 87%에 달했다. 아베노믹스의 원동력으로 꼽히는 '강력한 제도개선'도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반면 우리 국회는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할 때마다 법안과 연계하는 관행을 보이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300이 지난달 조사한 국회 법안처리실적 분석결과를 보면 총 1만4780건 중 4956건이 처리돼 법안처리율은 33.5%에 그쳤다. '처리'는 가결·부결·폐기·철회를 모두 포함해 어떤 형태든 의사결정을 내린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 국회도 정무적 이슈와 연계한 법안처리 지연 관행을 끊고 철처하게 개별 법안 중심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아베노믹스의 근간이 되는 경제정책이 속도를 내는 데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였던 만큼 우리 국회에서 야당의 역할도 주목된다. 일본 야당은 안보분야를 비롯해 역사문제 등에 여당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분야에 한해선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올초 아베 총리의 법인세 인하 발표에도 '침묵'하는 방식으로 아베 내각에 힘을 실어줬다.
야당은 정부의 소통부족 문제부터 개선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은 "정부의 일방독주식 행정에 맞서 야당이 하나라도 얻으려면 다른 사안과 연계해서라도 법안을 주고받아야 존재감이 생긴다"며 "정부가 사전에 국회와 충분히 논의하고 소통한다면 법안의 개별처리 풍토도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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