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한 지 불과 5시간여만이었다. 여야 대표가 지난 28일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청와대가 정면 비판하며 조기진화에 나섰다.
청와대가 '강공'에 나선 이면에는 내년 총선에서의 '전략공천' 지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총선 승패에 대한 우려도 반영됐다. 비박계 여당 지도부에 끌려가는 '조기 레임덕'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오전 11시50분쯤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전격 방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굉장히 바람직한 것으로 알려지는 상황에서 우려할 점을 얘기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라며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의 문제점으로 △역선택 및 민심왜곡 우려 △조직선거 가능성 △선거관리 비용 증가 △여론조사와 현장투표의 근본적 괴리 △당내 절차를 무시한 졸속합의 등 5가지를 제시했다.
이 관계자가 춘추관을 찾은 시간은 박 대통령이 뉴욕에서 돌아온 지 6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난 25∼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제70차 유엔총회, 유엔개발정상회의 기조연설 등의 다자 정상외교 일정을 소화한 박 대통령은 이날 새벽 6시쯤 전용기편으로 귀국했다.
박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여독을 풀기도 전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관련 사항을 보고하고 정면 대응을 결정한 뒤 일사천리로 비판 논리까지 준비한 셈이다. 그 정도로 청와대가 여야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를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이처럼 전격적인 강공에 나선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친박 확장'을 위한 전략공천 지분을 사수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친박 진영은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이른바 '유승민계' 의원들을 축출하고 전략공천을 통해 청와대 참모 등 친박 인사들을 대거 국회에 입성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을 중심으로 박근혜정부의 집권후반기 국정운영동력을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측의 구상대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도입될 경우 전략공천은 아예 없거나 최소한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둘째, 여당만 전략공천을 포기한다면 최악의 경우 총선 승패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다. 국민공천 과정에서 상대 당 지지자들의 교란행위 등으로 이른바 '역선택'이 발생해 상대적인 약체가 후보로 선출될 경우 의석 수 확보 경쟁에서 불리해 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야당의 지리멸렬로 상대적으로 유리해진 총선 구도가 자칫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은 최대 20%를 전략공천에 할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셋째, '조기 레임덕' 차단이다. 청와대의 뜻에 반하는 비박계 여당 지도부의 '마이웨이'를 방기하다간 최악의 경우 국정주도력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청와대의 우려다. 지난해 10월 김 대표의 '개헌' 발언, 지난 7월 여야의 국회법 개정 합의 당시 청와대가 고강도 대응에 나섰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당시 사태는 모두 김 대표가 물러서는 모양새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과거와 달리 김 대표가 쉽사리 뜻을 접지 않을 공산이 크다. 김 대표 스스로 정치적 생명을 걸고 "전략공천은 단 한석도 없을 것"이라고 이미 공언했다는 점에서다.
이에 따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전략공천 문제를 놓고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와 친박계 사이에 공천 헤게모니를 둘러싼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청와대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문제점으로 지적한 5가지 중 '전화여론조사의 응답률이 통상 2%에 그친다'는 1가지만 맞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의총 참석자들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