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의 폴리티션!]김무성이 포기한 '12.5%'

김태은 기자
2016.03.27 16:48

[the300]책임을 회피한 '비겁한 정치' 지적

정치의 속성은 백점 만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낙제점을 면하는 것이다. 개혁이든 혁신이든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다. 목표했던 것보다 조금씩 모자란 정도에서 만족하고 다음번, 또 그 다음번을 기약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치적 생명을 걸었던 상향식 공천 또한 김무성 대표 자신이 시인했듯 "100% 중 87.5%를 달성"한 "부족하지만 만족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 한 과정이다. 김 대표 측에서는 '절반의 승리'라는 자평을 하는 듯하다. '시작이 반'이란 격언으로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구나 그 시작이 좀 거창했는가 말이다.

김 대표는 '87.5%'를 지키기 위해 '12.5%'를 포기한 것을 타협이라고도 불렀다. 단지 숫자로 그 의의를 따진다면 상향식 공천을 둘러싼 김 대표의 싸움을 '위대한 첫 걸음'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87.5%'를 버리더라도 지켜야 할 '12.5%'가 있는 법이다. 원칙과 신뢰, 지도자의 책임이 버려진 정치를 우리는 '비겁한 정치'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상향식 공천이 누구의 정치적 생명을 담보했는 지 보자. 이재오·유승민·진영 등 새누리당과 운명을 같이 해 온 중진 의원들이 '배신의 정치'란 누명을 쓰고 당을 떠났다. 아니 축출됐다. 권력자와 끈이 닿지 않아도 상향식 공천으로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안고 선거에 나서려던 수많은 정치 신인들이 공천 문턱에서 주저앉혀졌다.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의 원칙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앞장서서 변호해온 최측근 의원조차 "상향식 공천한다는 말만 믿고 준비했던 사람들이 여론조사 한번 못해보고 주저앉게 돼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민망해했다.

김 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싸움에서 측근 의원들의 공천이 인질로 잡히는 것조차 무기력하게 방관했다. 정작 이 모든 싸움의 책임자인 김 대표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었다.

지난달 초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상향식 공천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듯한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김 대표 주위에서는 김 대표가 중대결심을 할 수도 있다며 믿어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대표직 사퇴나 총선 불출마 등 그야말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내던져서라도 상향식 공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김 대표가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독주를 제지하는 시늉이라도 하기 시작한 것은 공관위가 자신의 경선을 결정, 사실상 공천을 확정한 이후였다. 그 사이에 상당수의 후보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되고 탈당으로 내몰리는 '막장공천'은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김 대표는 당 대표직도, 자신의 출마도 희생시키지 않았다.

선거 후보 등록 이틀을 남겨놓고 김 대표가 꺼낸 회심의 '무공천 카드' 또한 꼼수에 꼼수로 맞선 것일 뿐 당 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로선 지지 정당 후보를 선택 혹은 심판할 권리를 빼앗겼고 부당한 공천결정에 맞서 국민들에게 직접 선택을 받겠다고 위험을 감수한 후보들은 싸움의 의미를 박탈당했다.

김 대표가 지킨 것은 당헌당규가 아니라 유승민도 지키고 박근혜 대통령도 거스르지 않았다는 알리바이에 가까워보인다. 김 대표가 '30시간의 법칙'을 깬 단 한 번의 예외가 본인의 대권행보를 위한 계산속이란 지적은 이 때문이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김 대표의 '무공천 카드'는 '또다른 줄세우기'라는 데 반박할 수 있을까.

김 대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은 군인정신이고 정치는 지면서도 이기는 것"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상향식 공천 싸움에서 진 것은 김 대표나 정치인들이 아니다. 상향식 공천에 대한 불신으로 공천권을 돌려받지 못한 국민이다. 사상 최악의 밀실공천을 막지도 못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지지않는 당 대표와 지도부에 배신당한 새누리당 지지자다. 잘못된 공천을 심판할 기회조차 빼앗긴 유권자다.

지도자는 국민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패배를 감수하는 자다. 김 대표가 포기한 '12.5%'는 지도자의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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