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전 오늘… 대한민국 '첫 선거' 치러지다

박성대 기자
2016.05.10 05:53

[역사 속 오늘] 제헌국회 구성 위한 첫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

1948년 5월10일 치러진 남한 첫 총선거 투표 광경/출처=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들은 조만간 온전한 주권국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국-소련 공동위원회가 1947년 8월 12일 완전 결렬되면서 한반도 내 통합정부 수립이 무산되고 말았다.

미국은 소련과의 협상 결렬 한달 뒤 유엔(UN·국제연합)총회에 한반도 문제를 정식 제기했다. UN은 △UN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거 실시 후 정부수립 △선거 후 미·소 양군의 동시 철수 △감시협의체로 UN한국임시위원단(UN위원단) 설치 등 미국이 제안한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8개국 대표로 구성된 UN위원단이 1948년 1월 7일 입국했지만, 소련이 38선 이북에 대한 UN위원단의 방문을 거부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에 UN은 소총회를 열어 '선거가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세울 것'을 결의했다.

UN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가 결정되자 이를 두고 남한 내 정치·사회단체 사이에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 한민당과 이승만 진영은 김구를 '크렘린궁의 신자'라며 맹비난했고, 김구는 이에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란 성명을 통해 민족분열 움직임을 강력히 규탄했다.

내부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UN의 선거계획에 따라 미 군정은 그 해 5월 9일 남한 단독 총선거를 진행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하지만 5월 9일이 일요일인 탓에 선거가 하루 뒤로 밀리게 되면서 결국 68년 전 오늘(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1948년 5·10 총선거 포스터./출처=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5·10 총선의 투표권 제한은 21세 이상 성인 남녀였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졌다. 전체 유권자의 96.4%가 선거인 명부에 등록했고, 이 가운데 95.5%가 투표에 참여해 높은 열기를 보였다.

하지만 선거기간 내 잡음은 여전했다. 단독선거를 찬성하는 측에서 일반인들에게 투표를 강요했다는 언론 보도와 UN위원단의 보고가 잇따르기도 했다. 김구와 김규식 등 민족진영 일부 인사들은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설립을 반대하며 총선에 불참했다.

총선 한달 전4.3사건이 일어났던 제주도에선 아예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제주도 선거구 2석이 유고가 되면서 첫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국회의원이 선출됐다. 선거 결과 △무소속 85석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석 △한국민주당 29석 △대동청년단 12석 △조선민족청년당 2석 등이 2석 이상 차지했다.

이렇게 탄생한 198명의 당선자들은 '국회소집을 위한 준비위원회' 결의에 따라 소집된 국회의원 예비회의에서 국회 개원일자를 5월 31일로 확정하고 헌법 제정에 착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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