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중 일부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오전, 사람들은 여느 때와 같은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사인은 '두부 손상 및 골절'.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대통령 퇴임 후 자리잡은 고향 김해시 봉하마을 뒷산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그의 자살과 사망 소식을 공식 확인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로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던 터라 사안은 더욱 민감하게 다뤄졌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2008년 7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이 불거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금품 및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이듬해인 2009년 초, 검찰 수사에 따르면 노건평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급 시계를 선물받았고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 씨로부터 3억원을 빌렸다는 등의 금품수수 의혹이 알려지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금품 수수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금품수수 혐의'로 조사하게 된다. 급기야는 그해 4월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직접 출석해 10시간 넘는 조사를 받았다. 그가 자택에서 차를 타고 검찰까지 이동하는 장면은 실시간 생중계 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친인척 비리 근절과 공직자의 청렴함을 강조해 온 만큼 가족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봉화마을 자택에 칩거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자살하기 일주일 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가 미국에 머물렀던 당시 4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권 여사를 소환하기로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새벽 무렵 컴퓨터에 짧은 유서를 남기고 자택 뒷산의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사건 이후 그해 6월12일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임에도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표적 수사를 진행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 본인 스스로 친인척 비리를 끊어내려고 노력했음에도 측근 비리가 터져나와 국내 정치의 비리 근절이 여전히 어려운 문제라는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서거 후에는 '가장 호감가는 대통령'으로 뽑힌, 역대 대통령 중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대통령이기도 하다.
재임 당시 부동산 급등, 한미 FTA 체결 등으로 그를 지지했던 진보 성향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그의 지지율은 한때 6~7%대까지 추락했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는 400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등 추모 열기가 이례적으로 높았다. 지난해 한국 여론조사 회사인 갤럽에서 역대 대통령 평가 설문을 한 결과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검찰 개혁 문제 등 다소 진보적인 정책을 과감하게 펼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거침없는 말투로 사람들에게 경솔한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그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문 대표가 차기 대통령 유력 주자로 자리잡고, 최근까지도 '친노·비노' 등 계파 문제로 야당 내 갈등의 중심에 선 인물로 등장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