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은 나이가 의식을 결정하는 사회다.
은퇴한 70대 노교수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읽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출산 문제로 헛심을 쓰지 말고 장년 은퇴자, 노년 일거리나 신경 쓰라’는 게 요지였다.
철저히 자기 세대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셈인데 그의 친구를 비롯해 지인의 다수가 70대일 테니 그들에게 2032년부터 시작되는 인구감소와 그 부작용은 남의 일인 게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비슷한 경험은 또 있다. 1차 베이비붐(1955~1963년) 바로 직후에 태어난 한 선배는 ‘65세 정년연장’에 집착한다. 대학생 아이가 있어 청년실업이 슬며시 걱정되지만 저출산은 관심 밖이다. 화려한 스펙과 경력에도 ‘나이’라는 잣대를 이기지 못하고 명예퇴직 등의 이름으로 쫓겨나는 또래집단의 처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상 최고의 실업률을 겪는 청년세대의 이해관계는 중장년세대와 다르다. 중장년세대의 ‘희망사항’은 청년세대에겐 ‘욕심’으로 다가온다. 국가가 노년층 일자리에 재정을 투입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할 수 있고 중장년층의 정년연장은 신입사원 채용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사람들의 접촉범위는 비교적 한정돼 있으므로 자기가 속한 세대의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다른 세대의 일은 관념적으로 인지하더라도 실감하기 어렵다. 세대간 갈등이나 충돌이 생기면 자기가 속한 세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고 주로 권력이나 자산을 더 많이 쥐거나 인구수가 많은 세대의 이익이 관철된다. 오랫동안 고령화가 주된 이슈였던 일본이 그랬다. 인구수가 많은 노인세대의 복지에 신경 쓰느라 젊은 세대의 복지는 뒷전이었고 이는 저출산 심화의 한 원인이 됐다.
한국이 일본의 인구구조를 닮아간다는 점에서 노인세대 위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현상은 한국에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중장년층 대선후보들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자기 세대의 정서와 사고를 공약에 담을 개연성이 크다. 지난 대선 때 기초연금은 그런 징후를 보여줬다. 더욱이 한국의 인구분포상 2020년이면 50대 이상이 유권자의 절반을 넘는다.
또 하나, 자기 세대의 직접적 이익을 정책에 담지 않는다고 해도 ‘조직화하지 않았거나’ 혹은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를 희생하려는 경향도 강해진다. 이미 대선후보들은 이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이재명 성남시장의 2800만명에게 연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 등이 그 예다.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 국민의당 후보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런 유의 공약들을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잠깐 따져보자면 81만개 공공 일자리를 만들려면 공무원 초임을 2000만원으로 잡아도 매년 16조원이 든다. 게다가 호봉승급분과 공무원연금 등을 더하면 이보다 많은 돈이 매년 든다. 15세 미만과 65세 이상에게 주겠다는 기본소득은 고령화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2명이 1.8명을 낳는 핀란드와 달리 1.2명을 낳는 한국은 납세자수 감소로 나라 곳간이 비게 된다. 혹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러므로 중장년세대와 그 세대의 대선후보들은 인구구조의 변화로 생길 파괴적 결과를 염두에 둬야 한다.
즉 반기문(1944년생) 문재인(1953년생) 황교안(1957년생) 유승민(1958년생) 안철수(1962년생) 이재명(1964년생) 안희정(1965년생) 등의 후보군은 100년은 아니어도 30년 뒤는 내다봐야 한다. 이들 중 가장 나이 어린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047년에 만 82세, 문 전대표는 만 94세가 된다. 이 세상의 주역도 아니고 정치무대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정치인은 ‘근시안’의 속성을 갖는 존재라고 하지만 자신의 정책이 지금의 청년세대가, 그 세대의 자식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헤아려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