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이제는 국회가 화답할 차례

구경민 기자
2017.05.16 03:51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2015년 법안 협상을 할 때다. 양보하며 주고 받으면서 협상이 마무리됐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자유당)이 막판 사인을 못하겠다고 하는 거다. 마냥 버티더라. 추가 협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승인이 안 떨어진 게 이유였으니 협상을 할 수도 없었던 거지….”

최근 기자와 만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한 말이다. 이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당 지도부 역할을 했을 당시 새누리당과의 협상 과정에 대해 30분 넘게 불만을 표했다. 협상 과정 내내 청와대에 수시로 보고하고 청와대가 승인을 내지 않으면 결국 새누리당이 협상을 결렬시켰다고 전했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12월2일 예산안이 자동처리되는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요구하는 법안 처리를 안 해주면 내년 예산안을 정부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며 여당이 으름장을 놨던 협상 뒷얘기도 늘어놨다.

결국 19대 국회는 '헌정 사상 최악 국회' '식물 국회' 등 온갖 오명을 썼다. '세월호특별법'과 '선거구획정' 등 여야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법안들이 19대 국회에 유난히 많아 법안 처리에 어려움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청와대 오더(지시) 정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 불통 정치’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많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과제인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과 ‘거래’한 게 발단이 됐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지만 청와대의 ‘승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허락’ 없이는 그 무엇도 해서는 안 됐다. 이후 청와대의 오더 정치는 더 심해졌고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19대 국회는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 법안 가결률이 31.6%에 그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민의 심판은 엄중했다. 20대 총선에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을 제1당에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이번 조기대선에선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혔다. 청와대 오더 정치에 눈치만 봤던 여당, 여당에 오더만 내리던 오만한 대통령과 청와대는 심판을 받았다.

이젠 역할이 바뀌었다. 10년만에 여당이 된 민주당이 '민주당 정부'로 국정 운영을 주도해 나가야할 역할이 남았다. 초반 분위기는 괜찮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임종석 비서실장과 전병헌 정무수석까지 국회를 찾고 야당을 방문하며 청와대와 국회의 소통, 협조를 강조하고 있다. '국청(국회-청와대)관계'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다. 청와대가 국회와의 협치를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읽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난다. 집권여당이 청와대와 호흡하고 야당과 타협,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여당인 민주당이 얼마나 야당과 성의있게 대화하고 협치에 나서는지에 따라 문재인정부의 초반 국정운영이 순항할수도, 아니면 파행될 수도 있다. 야당도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야당이 '여소야대' 상황에서 힘의 우위를 내세워 어깃장을 놓고 여당과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박수받을 수 있을지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정쟁으로 비쳐지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공산이 크다. 협치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되,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고 견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앞서 말했던 민주당 의원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청와대 지시를 받고 움직이기보다 자발적 입법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이런 다짐은 야당에게도 필요하다. 남에게 변화를 말하듯, 스스로에게도 변화를 강요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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