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 유니버설스튜디오, 레고, 글로벌 백신기업인 GSK. 누구나 알만한 세계적 기업들이지만, 이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우리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려고 했으나,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혀 투자를 철회한 회사라는 점이다.
#애플이 출시 예정인 스마트워치인 애플워치 시리즈4. 애플이 내세운 핵심기능인 심전도 검사 기능은 국내 판매용에는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 크다. 미국 FDA(식픔의약국) 승인과는 별도로 국내에서도 의료기기 승인을 따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이면서 병원 이용이 쉽지 않은 고령환자가 매년 늘고 있다. 의사의 원격진료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국내 원격진료는 의료계 반대로 산간도서벽지와 교정시설 등 의료사각지대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될 계획이다. 도심에 거주하며 홀로 사는 고령환자는 거동이 불편해도 원격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집단이익에 따른 규제의 폐해다.
대한민국은 ‘규제공화국’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AI(인공지능)·IoT(사물인터넷) 등 첨단산업이 발전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 십 년 해묵은 규제들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발맞춘 규제혁신의 속도는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정부가 규제혁신을 내세웠지만, 현장에서의 체감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집단이익을 대변하는 입법행태 등으로 규제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WEF(세계경제포럼)의 규제 관련 국제비교 통계를 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규제부담지수’는 세계 105위, ‘규제개선효율성’은 세계 59위에 그치고 있다.
‘수도권 규제’는 그야말로 ‘국가대표’ 규제다. 국토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지만,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국내외 경제여건도 변화해 제도의 효용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2015년)에 따르면 지난 6년간 62개 기업이 수도권 규제 등으로 공장 신·증설 투자 타이밍을 놓쳐 3조3329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고, 1만2059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밖에도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 막는 규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공장설립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길어 외국기업이 투자를 포기했다는 기사가 우리에게는 더 이상 어색할 게 없다. 기업 오너·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나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논란과 같은 권력화 된 거대노조 문제 등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규제’로 접근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업이 노동·토지·자본이라는 생산요소를 자유롭게 결합해 공급혁신을 일궈내야 한다.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소득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소비를 진작하는 경제기조는 공황과 같은 극심한 불황기에나 어울리는 단기정책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정책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이 꽃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집중돼야 한다. 이런 토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급혁신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임금(소득)과 소비가 함께 상승함으로써 다시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규제혁신’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경제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다. ‘무엇 무엇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다 안 된다’는 식의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무엇 무엇만 빼고 나머지는 다 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오늘 출시한 휴대전화가 고작 한 달 뒤면 ‘재고떨이’로 팔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내외 경제환경 또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남북평화무드에 힘입어 접경지의 땅값이 급등하고 철도 관련 회사의 주식이 각광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는 이런 변화 속도에 발맞춰 ‘낡은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상황이 어렵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일수록 “잠재력 있고 매력적인 시장으로서 투자가치가 높은 나라로 결국 한국만한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과 입법 차원의 세밀한 플랜과 로드맵이 절실하다. 그 첫 걸음은 시대의 변화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혁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