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한반도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북미 대치로 남북 관계에도 한파가 불어닥쳤다. 정부 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은 줄줄이 멈춰 설 위기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이산가족 화상 상봉 등이 그렇다. 남북 경제협력은 대북제재 탓에 입 밖에 꺼내기조차 쉽지 않다.
빙하기지만 물줄기가 완전히 끊긴 건 아니다. 남북 민간 스포츠 교류의 물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는 6월 제6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6월29~7월9일)의 평양 개최가 추진되고 있다. 민간 단체인 (사)남북체육교류협회와 북한 4.25 체육단이 매년 정기적으로 공동 개최하는 대회다.
유소년 축구 교류는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의 널뛰기 속에서도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22차례 남북을 오가며 끊김없이 정착된 유일한 남북교류 사업이기도 하다. 올해 대회는 5월 원산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지난 3월 준공을 목표로 원산에 국제 축구경기장을 건설 중이었으나 공기에 차질이 빚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제재 여파로 최근 원산갈마지구 완공 시기를 6개월 늦추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대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으나 평양 개최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지난 9일 찾은 경기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의 협회 사무실은 11일로 예정된 대회 출범 행사 준비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협회를 14년째 이끌고 있는 김경성(59) 이사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처럼 가장 효과적인 대화 수단이 바로 '스포츠 교류'"라며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 남북관계에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 이사장은 분단 이후 민간 차원의 남북 민간 스포츠 교류에 가장 크게 공헌한 대북 전문가로 꼽힌다. 북한과 첫 인연을 맺은 건 2005년 5월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 윈난성 쿤밍시 홍타스포츠센타를 임대 운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홍타스포츠센터는 당시 세계 최고 시설을 갖춘 축구 전지훈련장으로 유명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전지훈련차 쿤밍을 찾은 북한 대표팀에 무상으로 경기장 등 센터 사용을 허가했어요. 이후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북한 선수들과 우리 축구선수까지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스포츠 교류의 싹이 텄습니다. 남북 유소년 축구 교류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2006년 북한 20세 이하 대표팀이 러시아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하는 파란이 일어났다. 피파(FIFA) 주관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가 따낸 첫 우승이었다. 김 이사장은 경기력 향상에 일조한 공로로 북한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로 북한은 2008년 서울로 치면 잠실에 해당하는 대동강변의 노른자위 평양 땅 35만 평방미터(약 10만평)를 김 이사장에게 무상 제공했다. 이듬해엔 평양에 '김경성 초대소'가 만들어졌다.
김 이사장은 "6월 평양 아리스포츠컵 대회가 남북교류의 물꼬를 다시 트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해안 육로를 통해 원산을 거쳐 평양 땅을 밟기로 한 것도 남북관계의 '상징성'을 고려해서다. 김 이사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를 평양 태성골프장에서 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제재 저촉 여부 등을 검토하고 조만간 북측과도 실무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남북이 대북제재와 무관한 스포츠 교류로 무한 신뢰를 쌓고 자연스럽게 남북경협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이 쏘아올린 남북 신뢰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번의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물을 낳았듯 남북간 스포츠 정기교류를 확대해 동질감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분단 이후 남한의 방북 인원은 150만명인데 반해 북한의 방남 인원은 1만명이 채 안 된다. 남북간의 신뢰를 가로막는 심각한 불균형과 이질감의 원인"이라며 "남북 유소년 축구대회가 장기 지속되는 것도 철저하게 남북을 오가며 상호 균형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민간 스포츠 교류를 남북 스포츠 산업의 발전으로 연계하는 대북 사업도 고민 중이다. 김 이사장은 "스포츠로 쌓은 신뢰는 결국 경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제재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에서 무상 제공받은 평양 땅에 골프장과 호텔을 지어 외국인 주재원들을 위한 신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