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태'가 북핵협상·호르무즈 파병에 미치는 영향(종합)

오상헌 , 권다희 , 최태범 기자
2020.01.06 15:04

[the300]美 이란 군부실세 참수, 北 대미노선 영향 전망도...정부 '호르무즈 딜레마' "예의주시"

5일(현지시각) 이란 아흐바즈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바그다드 공항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관이 도착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중동 정세가 일촉즉발인 가운데 '이란 사태'가 산적한 한국 외교·안보 현안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인 북미 관계는 물론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 한미 관계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김정은, 약속 어길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 나에게 한 약속을 어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새로운 전략무기'와 '충격적 실제 행동'을 언급했던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김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중단 약속을 파기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미 정보당국이 관련 동향과 움직임을 포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일각에선 북한의 도발 움직임과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지난 3일 새벽(현지시간) 이란 군부 실세이자 2인자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참수 작전'으로 제거한 이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이란 사태가 북미 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먼저 이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북한이 북미 대화 교착 기간을 핵능력 고도화의 기회로 활용할 것이란 예상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이라크 전쟁 당시 북한이 핵능력을 급격히 키웠던 전례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애미=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복음주의 지지자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이라크 공격에 관해 "솔레이마니는 미국 외교관과 군인들에 대해 해로운 공격을 모의하고 있었다"며 "전쟁을 멈추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라고 밝혔다. 2020.01.04.

◇北, 이란 공습 간접 비판 '수위 조절'

북한의 대미 전략 노선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를 폭살한 데 대해 "'참수작전'에 매우 민감한 북한을 어느 정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란 상황 전개에 따라 북한이 압박을 느낄 수도 있고, 오히려 도발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란 사태에 대해 첫 반응한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에서도 '수위조절'의 흔적이 읽힌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중국과 러시아 유엔헌장을 위반한 미국의 미사일공격 규탄'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군이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데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전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활용했다. 반미 국가들이 미국과 마찰을 빚을 때 강하게 대미 규탄을 하던 전례와 비교된다. 북한은 지난 2017년 미국이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습하자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강력한 비난 메시지를 냈다.

(서울=뉴스1)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12월28일부터 31일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 7기 제5차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은 전원회의 참가자들이 김 위원장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조선중앙TV 갈무리) 2020.01.0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과 이란 달라"…北 '도발 가능성'도

북한이 미국의 외교 정책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도발을 실제 감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의 무력시위를 북한 시간표대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새 전략무기 공개'를 경고한만큼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필요성도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3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북한은 아마 미국이 두 지역에서 동시에 적대정책에 집중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이를 유리한 기회로 삼으려 할 수 있다"며 "ICBM 발사와 같이 전에 없던 일을 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란과 북한을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이란과 달리 미국을 직접 공격한 적이 없다"며 "참수작전도 (북한에 적용하기엔) 가용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북한과 연계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 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는 가운데 청해부대 31진 장병들이 함수갑판에 정렬하고 있다.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은 함정 승조원을 비롯해 특수전(UDT)장병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헬기(LYNX)를 운용하는 항공대 장병 등 30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과 1월 중순에 임무를 교대하여, 2020년 7월까지 약 6개월 동안 파병임무를 수행한다. (해군 작전사령부 제공) 2019.12.2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호르무즈 파병 딜레마 "결정된 바 없다"

이란 사태는 우리 정부가 검토 중인 중동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에도 직간접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파병을 한미 동맹 강화는 물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과 연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던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동맹국인 미국의 파병 요청을 외면하기 어렵지만, 대(對) 이란 관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결정된 바 없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선박과 국민 보호에 기여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아직까지 파병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최 대변인은 그러면서 "정부는 현 미국-이란 사태를 포함해 중동 지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유사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공조를 통한 신속대응 방안이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것이냐’는 질문엔 "구체적으로 아직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서울=뉴스1) =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중동 정세 관련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0.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악 상황 대비"…경제·안전 대응책 마련

정부의 신중한 입장에는 이번 중동 사태가 국내 산업과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에 미칠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 관계 강화와 대북정책 공조, 방위비 협상 등을 감안해 파병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왔다.

하지만 이란 사태로 중동 정세가 악화하면서 섣부른 파병 결정이 이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데다 자칫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우려해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수입 원유의 70% 정도가 통과할 정도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편, 청와대는 이란 사태와 관련해 이날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다. 정부도 이날 범정부 차원의 실무대책 회의에서 중동정세 악화가 교역투자·원유가격 등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및 재외국민·기업 보호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전방위적 대응책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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