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초반부터 ‘삐걱거린다’. 지난 8일로 예정됐던 원 구성 시한을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15일 일부 상임위원회 위원장 선출을 완료했으나 국회 앞날은 ‘시계제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변화와 혁신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시작된 지 오래나 한국 국회는 제자리걸음이다.
‘협치’를 위한 여야 인식 차에 기인한다. 여당은 ‘속도와 성과’에, 야당은 ‘절차와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여당은 달려나가고, 야당은 멈춰세운다. ‘20대 국회’ 데자뷰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개최된 ‘대한민국 4.0 포럼’(머니투데이 주최, 국회 후원)에서 ‘20대 국회’가 국민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데 공감했다. 협치와 상생은 실종되고, 목표와 성과 없이 싸우는 국회에 그쳤다는 뼈 아픈 반성이다.
그러나 대안에 대한 여야 시각 차는 사뭇 달랐다. 김 원내대표는 “일하지 않는 국회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국민들에게 국민 존재 이유를 인정받을 수 없다”며 “국회가 국민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 드린다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난극복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개척할 선도형 국회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20대 국회에서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고 정치 공방과 남 탓으로 얼룩졌다고 봤다. 그러면서 주 원내대표는 “여대야소 상황에서 상호존중 하에 충분한 대화와 숙의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4년 뒤 또다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드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당은 눈 앞의 국난 극복은 물론, 새 시대를 위한 비전과 추진력으로 분명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다. 야당은 비판적 목소리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한편 이들의 잔치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양 당의 자세는 2년 뒤 대통령 선거와 무관치 않다.
이 때 여야 모두 ‘협상’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176석(선거 후 탈당·제명 등 제외)의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점은 국민의 선택으로 존중돼야 한다. 각종 의혹과 해석에 힘쓸 때가 아니다. 선거 후 양당 지지도 격차가 2배 이상 유지되는 이유도 주목해야 한다.
자신의 것 이상을 요구한다면 견제가 아닌 ‘발목 잡기’로 이해될 여지가 높다. 야당이 국회를 멈춰 세우면서 여당과 같은 수준의 권한을 요구한다면, 소수 정당의 목소리 역시 귀 기울일 자신감도 함께 갖춰야 한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의석 수를 앞세워 ‘밀어붙이기’ 식 의사결정으로 일관하면 책임은 오롯이 여당 몫이다. 대체로 뚜렷한 정책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이같은 의사결정 방식은 이 기간을 견뎌내지 못하게 한다.
정책 성과가 낙제점을 받으면 비판 여론은 ‘쓰나미’(지진에 의한 해일)가 돼서 돌아온다. 여당의 태도와 자세를 재차 거론하며 일찌감치 정책 자체를 실패로 규정하는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참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나 문재인 정부 초기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반면교사다.
여야가 공동체 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2차 유행 우려가 높아진다. 생활 방역과 경제 활력이 ‘트레이드 오프’ 상황에 놓인 점은 국민 불안을 키운다.
생활 방역 수위를 높이면 경제에 타격을 주는 상황에서 방역 수위를 높이기만 할 수도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변화와 혁신의 시대에 진입한 지 오래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지 수 년이 흘렀으나 국회는 뚜렷한 아젠다 없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았다.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치밀한 대안이 필요한 시기다.
정책 성과를 대선 승리로 잇겠다는 각오나 결코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모두 국익을 위한 ‘협력’보다 후순위에 지나지 않는다.
여야가 협상과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한다는 자세를 갖췄을 때 ‘협치’는 작동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국민을 위해 구체적 성과를 내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하는 정치다.
이 지점에서 여야 모두 ‘아군 대 적군’ 식의 타락한 진영 의식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최악의 원내대표’, ‘협상은 없고 협박만 있었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은 남 탓으로 일관하던 20대 국회로 회귀를 부추긴다. ‘상임위원장 직을 다 가져올 수 있다’, ‘언론이 도와달라’는 식의 선동적 발언 역시 협치의 장에선 자제돼야 한다.
여야 협치를 위한 공부모임이 잇달아 결성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초당적 연구모임인 ‘우후죽순’이 대표적이다. 지난 9일 열린 1차 정기토론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위한 입법 과제 해결 등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날 이광재 우후죽순 공동대표(민주당)는 최형두 공동대표(통합당)에 박수 갈채를 보냈고 최 대표도 밝은 얼굴로 “구체적인 공부를 여야가 같이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