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이명박근혜' 안 된다…계파 대신 인재 키워야 보수가 산다

박종진 기자, 권혜민 기자, 김상준 기자, 유효송 기자, 서진욱 기자
2020.11.16 06:15

[the300][대한민국 4.0 II] 진보의 위기-보수의 자격【4】(下)

'답정너'에 대답 못하는 보수, 실력 없이 미래도 없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송석준 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위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13/뉴스1

보수의 자격은 한마디로 소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다. 현 정권의 대안세력으로서 보수에 원하는 국민적 요구는 명료하다.

여론조사에도 일관되게 나온다. 취임 직후 무려 80%대 지지율을 보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인 2018년 12월 3주차에 첫 데드크로스(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섬, 이하 여론조사업체 갤럽 기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직면한다.

집권 초반 강하게 밀어붙이던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 논란이 본격화되고 고용정책에서 실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부정평가의 이유로는 '경제·민생문제 해결 부족'이 단연 1위(47%)였다. 올 여름부터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첫째로 꼽혔다. 지금까지 이 같은 경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문제 해결하라" 출제자 국민에게 답해야…도로 '이명박근혜' 안돼

국민의 눈높이에서 피부에 와 닿는 경제·민생 대책이 답안지다. 시험지는 오래 전부터 주어졌지만 보수는 문제풀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 야당은) 뭐가 터지면 정략적으로 어떻게 (여권에) 타격을 입힐 까 이것 외에는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임차인'이라는 5분 연설로 초선 윤희숙 의원이 일약 스타가 됐듯 국민은 대답에 목말라 있다. 부동산 정책은 물론 탈원전, 일자리 대책 등에서 보다 선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명박근혜' 도돌이표가 돼서도 안된다. 부동산 정책에서 공급확대·규제완화를 역설하더라도 단기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지, 예전 대책을 끌어온다면 현 시점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등을 실력으로 풀어내야 한다.

과거의 인식이나 구도에 갇히면 답이 없다. 시사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부동산·교육 등 고질적인 민생문제 해결에 "핵심 지지층의 목소리를 반영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고 진영 논리를 벗어나야 대안이 나온다"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아무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10월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 아파트에 재건축 승인을 요구하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목동 신시가지9단지가 안전진단 최종 탈락으로 재건축 사업에 비상이 걸리면서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 행동이 보이고 있다. 2020.10.22/뉴스1

이미 낡은 보수는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명박근혜' 9년은 고속 성장 시대의 향수를 안고 보수의 실력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긴 끝에 탄핵으로 무능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제 시대에 맞는 새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보수는 존립 자체가 어려워졌다.

지난 총선 전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60대조차 보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합리성과 공정, 안정적 개혁, 해결능력을 갖춘 시장경제 대책으로 매력있는 보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전 연령대에서 외면받을 처지다.

◇ESG·탄소제로, 미래를 보고 현재를 바꿔야

미래 비전이 절실하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의 집권 자격에 "시대정신을 읽고 미래를 위한 혁신 어젠다(의제)나 스마트 성장을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된다"고 밝혔다.

벌써 기업은 앞서가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은 거스를 수 없는 기업경영의 중심이 되고 있다. 급진적 주장으로 여기던 '탄소 제로'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당장 삼성이 석탄발전 관련 신규사업과 투자를 중단하는 등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웠다. 기업들은 미래 지속가능성이 곧 생존 능력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런데도 보수 정치인들은 적극적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는커녕 아직도 개발독재식 성장지상주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차산업 혁명시대에 기업과 노동의 관계, 고용문제 등에서도 전혀 다른 접근과 해법이 필요한데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보수의 핵심가치인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때로 희생도 따른다. 기업이 탈석탄을 위해 눈앞에 이익을 포기하듯 보수도 전통적 사회구조에서 움켜쥐던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곧 보수의 품격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수야당에서) 대안을 내놓으려면 일정 부분 사익을 희생하면서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9월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탈석탄 공동캠페인 '석탄을 넘어서'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왼쪽부터 채종국 충남 서천군 미세먼지 고압선철탑 대책위 사무국장, 전미경 사천남해하동 석탄화력발전소 주민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임승진 인천 영흥주민협의회 대표, 김민수 미세먼지 해결시민본부 대표, 김경은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전국 환경, 시민, 청소년단체 15곳은 유엔 기념일 '푸른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을 맞아 국내 최대 탈석탄 공동캠페인을 출범하며 정부를 향해 2030년 탈석탄 선언 및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2020.9.7/뉴스1

◇'한국판 헤리티지' 싱크탱크 육성 절실

싱크탱크의 부재를 한탄하는 목소리도 크다. 진영논리에 매몰 되지 않고 보수가 시장경쟁, 성장, 자유, 자기책임을 강조하며 민주주의, 분배, 평등, 사회연대를 강조하는 진보와 짝을 이뤄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루려면 두뇌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짜는 대표 연구기관이 없다.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의 필요성이 십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요원하다. 보수정당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은 옛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민간기업이나 경제단체의 연구소도 정치적 이유 등으로 활동이 위축된 상태다.

그나마 최근 경제3법 등 현 정권의 정책 기조에 반발해 재계 등을 중심으로 독립적 민간 연구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 되는 정도다.

우선 제한적 조건에서나마 대안제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어젠다 선점은 못해도 국민의힘 고유의 목소리를 담아 대안을 충실히 내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진·권혜민·김상준·유효송 기자

계파 투쟁 골몰한 보수… 미래도 사람도 없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뉴스1.

'인재난'은 보수 정당이 존폐 위기에 처한 원인이자 결과로 지적된다. 국민의힘은 총선 참패를 딛고 보수 재집권 기반을 다지고 있지만,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는 인물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정치권 밖 현직 검찰총장이 보수 민심을 받으며 대권 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른다. 이게 제1야당이 처한 현주소다. 당의 미래를 이끌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능력과 대중성을 갖춘 새로운 인재 영입도 요연하다.

◇몰락 자초한 '계파 갈등'… 친이·친박 정쟁, '인재 기근 현상' 불러오다

계파 갈등은 보수 진영의 몰락과 인재 기근 현상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이다. 보수 정당의 시초인 민주자유당 시절부터 편가르기식 정치가 이어졌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계파 간 갈등으로 여러 차례 분당 위기를 겪었다. 다른 계파의 인물을 경쟁상대가 아닌 공격과 배척의 대상으로 여겼다. 결과적으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탈당과 자유민주연합 창당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이어지며 15대 대선 패배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불거진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 갈등도 다르지 않았다. 계파 '전쟁'으로 보수 진영 내 심각한 반목이 이어졌다. 권력을 잡은 계파는 공천권을 무기로 상대 계파를 말살했다. 당내 다양성이 사라지고 리더의 명령에 복종하는 분위기만 남았다. 충성심을 우선하는 상황에 자기 소신을 밝히는 인재가 설 자리는 없었다.

2011년 6월 3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있다.

친이계와 친박계 모두 집권에 성공했으나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했다. 당의 혁신과 쇄신을 이끌 리더를 키워내지 못했다. 계파에 매몰된 정치인들만 양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과거의 영광마저 지워졌다. 결과적으로 민심을 잃은 보수 진영은 패자가 됐다. 여당의 압승으로 돌아간 지난 총선은 보수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호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문제는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안정당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구·경북을 제외하면 윤 총장 지지도가 국민의힘보다 높았다"며 "지도자가 없는 국민의힘을 지지해서 뭐하냐는 국민들의 의사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진영의 인재 기근 현상에는 "박 전 대통령 탓이다"며 "차기 지도자를 키우고 관리하기는커녕 짓밟아버렸다"고 지적했다.

;◇계파 없는 지금이 기회다… 비호감 벗고 '인재 육성 시스템' 갖춰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3명 중 초선은 58명에 달한다. 유력 대선주자 부재로 계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계파가 사라지고 당내 쇄신의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야말로 인재 영입 시스템을 재정비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 기회마저 놓치면 대구·경북에 국한된 지역 정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최우선 과제는 비호감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신뢰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외부 인사가 국민의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국민의힘을 정부여당의 대안세력으로 인식해야 가능한 일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민의힘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시대정신 없이 여당 비판만 하니 국민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며 "신선한 목소리, 대안, 비전 제시가 없으니 인물에 대한 식상함이 개선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득권 정치에 안주할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국민들이 주목할 혁신에 나서야 한다"며 "국민들이 원하는 의제에 먼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인재 육성 기반을 다지는 작업도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처럼 10~20대 지지자들이 정당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 정치인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정치 문화 혁명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단 의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정치 참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정치에 참여하고 관여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청년들을) 국회의원을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 지도자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진욱·권혜민·김상준·유효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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