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밤 10시30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서울 여의도 국회로 달려갔다. 밤 10시50분쯤 국회 인근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국회는 조용했다. 국회 출입을 막는 경찰이나 군인의 모습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국회 정문에는 통상적인 경비 인력 1~2명만 보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수십분 사이 국회 주변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국회 출입문마다 통행을 막는 경력이 자리했고, 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국회에 도착한 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밤 11시쯤까진 국회의원·보좌진 등의 국회 출입은 막지 않았는데 자정이 가까워지자 의원들조차 진입이 원활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50분쯤 국회의원들의 통행도 막으라는 무전이 경찰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경찰들은 국회의원들의 월담을 막진 않았다. 12월4일 0시10분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담을 넘으려 시도했다. 처음에는 경찰들이 월담을 제지했다. 의원의 월담을 돕던 보좌진은 "의원님은 보내주세요" "계엄은 막아야 하잖아요"하고 호소했다. 그러자 경찰들은 의원들이 담을 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이 비슷한 장면을 직접 본 것만 여러 차례다. 이후 국회의원 190명이 본회의에 모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상계엄 선포를 놓고 제기되는 의문은 크게 3가지다. '계엄을 왜 했나' '계엄을 왜 지금 했을까' '계엄은 왜 실패했나' 등이다.
앞의 두 질문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에 분노했다'는 등의 설명이 제시되지만 여전히 납득이 되진 않는다. 부정선거 증거 확보는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수단이 아니라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고, 야당이 주요 공직자를 탄핵소추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계엄이 실패한 이유는 전국민의 눈과 귀로 확인됐다. 일선에 투입된 경찰·군인들이 계엄과 관련된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에 진입한 군인들도 당직자와 보좌진, 국회 직원 등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7년이 지났다. 계엄령이 전시 또는 사변 등 비상사태 이외의 순간에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사실을 그들만 몰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