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 기술자들의 정치

차현아 기자
2024.12.30 05:00

[the300]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국민의힘 의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규탄하고 있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의결 정족수에 대해 국무총리 기준인 재적의원 과반(151명)을 적용하기로 했다. 2024.12.27/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요즘 녹취 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모 야당 의원에게 "여당 의원들과도 만나서 대화 하시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렇게 만났다가 몰래 녹취라도 따이면 큰일난다"는 게 그가 여당 의원들과 만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국회는 정치를 하는 곳이고, 정치는 곧 대화와 타협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상대방을 정치적 타협 대상이 아니라 몰래 녹취하고, 언제든 법적으로 공격해올 수 있는 존재로 보는 게 오늘날 국회의 현실이다.

과거엔 어땠을까. 한 번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당시 최전선에 있던 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엔 표결을 앞두고 이탈표를 끌어내기 위해 양 진영 사이에 치열한 물밑 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전한 지금은 현실은 8년 전과 크게 달랐다. 그는 "요즘은 만나서 커피 한 잔 마시기도 힘들다"고 했다. 20대 국회까진 가능했던 게 22대 국회에선 불가능해졌다.

탄핵 국면 이후 더욱 극심해진 여야 대치 상황도 애초에 정치가 작동했다면 없었을 일이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에 의해 삭감만 이뤄진 채 국회를 통과할 일도,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내리는 일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8년 만에 또 국회 문턱을 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여야가 각각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의 임명 여부에 대해 여야가 합의를 이뤘다면 한덕수 대통령 국무총리 권한대행이 굳이 임명을 보류하는 일도,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정치가 사라지니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는 모조리 사법의 영역이 됐다. 법 해석 문제가 정치의 자리를 채우고, 법 기술자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됐다.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권한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도 있는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의결 정족수의 기준을 대통령과 국무위원 중 어디에 둘지를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라고 만든 곳이 국회인데, 오히려 국회가 이런 문제를 사법에 떠넘긴다.

정치적 불확실성의 고조로 원/달러 환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정치 실종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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