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인권 변호사→성남시장→경기도지사→유력 대선주자
2022년 20대 대선까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력이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이 전 대표는 3년 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와 '국회의원 이재명'이란 타이틀을 하나 더했다. 그리곤 당 대표에 됐다. 그렇게 국회의원과 당 대표에 두 번씩 올랐다. 이 전 대표를 주변에서 본 많은 의원들은 이 전 대표에 대해 "여의도에서의 3년 간의 경험이 또 다른 이재명을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주민등록상 1964년 경북 안동에서 5남2녀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가난했던 가정형편 탓에 이 전 대표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 소년공 생활을 했고 공장 프레스기에 팔이 끼여 장애를 입었단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전 대표는 생계와 공부를 병행해 검정고시를 치렀다. 이후 전액 장학금과 매월 생활비 30만원을 받고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 대학 졸업 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한 선택은 이 전 대표를 자연스럽게 정치의 길로 이끌었다. 이 전 대표는 2004년 3월 성남 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에 참여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성남시장에 도전, 한 차례 낙선(2006년) 끝에 2010년 당선됐다. 2014년 성남시장에 재선된 후에는 '청년 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지원' 등 3대 무상복지 정책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성공적 시정 경험을 발판으로 2017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8년에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 도지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20대 대선에 도전했다. 2021년 마침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본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0.7%포인트(P)차로 쓴잔을 마셨다.
이 전 대표가 20대 대선에서 낙선한 지 두 달 만에 인천 계양을 보궐 선거에 도전한 것은 정치권의 예상을 깬 행보였다.
당시 이 대표도 선거에 출마하며 "저의 정치적 안위를 고려해 지방선거와 거리를 두라는 조언이 많았고 저 역시 조기 복귀에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당이 처한 어려움과 위태로운 지방선거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민주당에 힘을 보태고 어려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위험한 정면 돌파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0.5선'으로 여의도 국회에 입성한 것은 정치인 이재명에게 또 다른 자산이 됐다는 평가들이 뒤따랐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 전 대표가 처음 국회에 들어와 대표직을 맡았을 때만 하더라도 도지사 때의 경험에 비춰 어떤 일을 추진하면 당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대했던 듯한데 그렇지 않아 당황도 좀 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며 "지금의 이 전 대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끊임없이 듣고 설득하고 숙고를 거쳐서 결정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의견을 유연하게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2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대표가 당시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 관련 민주당 당론을 기존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유지키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이 전 대표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고수했었지만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에 좀 더 유리하단 이유로 비판받았었다.
상당수 의원들이 당시 민주당이 다당제 가치를 지향해 온 점, 이 전 대표가 과거 대선에서 준연동형제를 옹호하는 취지를 발언을 했었으니 약속을 지켜야 한단 점 등을 들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 전 대표를 설득했다. 결국 이 전 대표는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 걸음"이라며 "국민들께서 멋지게 이기는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는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총선 결과는 300석 중 171석(우원식 국회의장 포함)을 얻은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인천 계양을에 출마했을 당시 내놨던 '총선 승리'의 약속도 지키게 됐다. 또 이 총선 승리를 발판삼아 지난해 8월 당대표 연임한 이 전 대표는 이제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
소통은 이 전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부터 강조해 온 덕목이다. 이 전 대표는 2017년 낸 저서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성남시장 시절 시장실을 9층에서 시민 접근성이 좋은 2층으로 옮긴 일화를 적으며 "정치는 소통"이라며 "지칠 때까지 경청해가며 공감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정치의 핵심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망각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 국민은 2016년 말(국정농단 사태 당시)에 이르러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선거제 개편 문제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모수개혁 여야 합의과정에서 소득대체율(받는 돈) 43%안을 전격 수용한 점이나 올 초 도입될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이 모두 당 안팎과의 소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재명의 길은 순탄하진 않았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초 부산 현장 활동 중 목 부위에 흉기 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전 대표는 당대표 연임에 도전할 때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살인테러 미수 사건 이후 남은 생은 하늘이 준 덤으로 여기고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또 다른 칼날이 저를 향한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 생명이 위태로웠던 때도 여러 차례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1심에서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징역 1년·집행유예 2년형을 받아 정치인으로서 벼랑끝에 내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난달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기사회생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대선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리스크를 사실상 털어버리면서 그야말로 '별의 순간'을 잡았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검찰로부터의 기소 남발과 함께 보수진영에서 오랜 기간 이 전 대표에 대한 악마화가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내가 아는 한 이 전 대표는 두뇌가 명석하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겪은 경험 면에서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본다. 이 전 대표가 국난 극복에 쓰임 받도록 이제는 재평가 받을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