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슈 선점하려고 내는 거죠, 뭐. 패션처럼 항상 유행하는 IT(정보기술) 키워드가 있잖아요. 지금은 그게 AI(인공지능)니까. "
최근 과학기술 분야 정치인과 만나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AI 산업을 키우겠다며 수백조원대 투자를 공약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AI의 복잡한 기반 기술은 몰라도 다들 챗GPT(Chat GPT)를 이용해 지브리 애니메이션풍으로 프로필 사진 한 번쯤은 만들어봤을 것이니, AI 분야에 대한 거액의 국가 지원 공약을 만드는 게 그리 어려웠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AI 관련 대선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기대감에 부응해 표심을 얻으려는 것일 뿐 내실은 부족한 공약이란 지적들이 나온다.
이름을 가리면 누구의 공약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천편일률적인데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겠다면서 정작 자금은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임기 내 성과가 없으면 그 다음 정부에서 전 정부의 '낭비성 사업' 취급을 받으며 감사 대상이 것이 명약관화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AI가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빠르게 진화하는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생길 사회적 불평등부터 데이터 주권, 알고리즘 편향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법은 주요 대선후보들이 내놓는 공약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은 2023년 저서 '권력과 진보'에서 지난 1000년 간의 기술의 사회·경제사를 톺아보며 기술의 발전이 항상 사회의 진보를 지향해왔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그나마 지금의 진보가 가능했던 건 기술이 소수의 사적 이익이 아닌 사회 공동의 번영을 향할 수 있도록 그 발전 경로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개입해온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 경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민주적 통제, 즉 정치 제도였다.
6·3대선에 투표할 때 누가 AI가 가져올 미래를 정확히 직시하고 그 부작용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지도 함께 따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