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사과 및 재발방지책 발표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높이 평가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정부 조치에 대해 유화적인 반응을 보인 셈이지만 북한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두 국가론'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적 언급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 부부장은 1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가 보도한 담화에서 전날 정동영 장관의 브리핑과 관련해 "무인기 도발 행위를 공식 인정하고 다시 한번 유감과 함께 재발방지 의지를 표명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지난 10일 명동성당 미사에서 정부 고위당국자로선 처음으로 무인기 사건에 유감의 입장을 표명했다. 김 부부장은 이번 담화에 앞서 지난 13일에도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이라며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신속하게 입장을 밝힌 것에 유의한다"며 "어제 정 장관이 발표한 재발 방지 조치들은 남북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서 정부는 이를 책임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이례적인 빠른 반응을 남북관계 개선의 긍정적 신호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평가보다는 유의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무인기를 둘러싼 일련의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 정부에 있으며 우리 정부의 공식 사과는 한국이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을 '적국'으로 칭하고 남북이 맞닿아 있는 남부 국경 전반에 대한 경계 강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 장관의 사과를 '자백'의 프레임으로 가두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려는 심리전을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선의(유감 표명)를 약점으로 보고 더 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한 이후 군사분계선 인근에 새 방벽과 울타리, 대전차 장애물 등을 설치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 부부장의 담화가 북한이 주장하는 '두 국가' 기조를 지속 강화하겠다는 뜻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의 '적국' 발언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처음 등장한 표현은 아니다"라며 "상호위협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정부로서는 남북 간 신뢰 국면을 만들고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수일 내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한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도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강화하는 대남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북한의 두 국가 기조가 장기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한국을 무시하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 교수도 "(북한이 남북관계를) 철저히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접근하고 그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국경을 관리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며 "정부의 사과를 '동포애적 화해'가 아닌 '타국 간의 분쟁 조정'으로 취급해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두 개의 적대 국가로 공식화하는 절차를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정부는 접경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삼가고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남북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