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 성남의 쿠팡로지스틱스 서비스(CLS) 배송 캠프 앞. 동이 트기도 전인 오전 6시30분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염 의원은 다소 지친 얼굴로 취재진에게 "근로자들이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지 오늘 또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밤 8시부터 이날 새벽까지 쿠팡 헤롤드 로저스 대표와 12시간 새벽 배송을 했다. 이날 처리한 물량은 약 300여건. 130여 가구를 돌아다닌 결과였다.
이날 체감 온도는 약 -1℃. 가만히 있어도 손이 빨갛게 굳고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였다. 염 의원은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를 둘러맸고 편한 운동화 차림이었다. 두 사람은 준비 운동을 하고 프레시백 회수, 반납, 물량 소분, 상차 작업을 포함해 3회전에 걸친 배송 업무를 수행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염 의원과 로저스 대표는 '로켓 배송' '로켓 프레시' 등이 적힌 박스들을 배송 차량에 옮겨 실었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인 채 직접 무거운 박스들을 이곳저곳 옮기기도 했다. 택배 상자에 붙여진 바코드 스티커도 꼼꼼하게 살폈다. 양손에 택배 물량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직접 배송 업무도 수행했다.
로저스 대표는 이날 취재진 질의 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만 염 의원은 이번 체험이 로저스 대표에게 앞으로 회사를 운영하거나 현장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로저스 대표가 지금 당장 무엇을 바꾸겠다고는 하진 않았으나 제 얘기에 일부 수긍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전했다.
이날 새벽 배송 체험은 염 의원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이다. 염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쿠팡 관련 연석청문회에서 "택배 야간 근무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했고 로저스 대표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염 의원 측은 지난 1월부터 일정을 협의했지만 로저스 대표가 경찰 수사와 미국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 등을 준비하면서 한 차례 미뤄졌다. 쿠팡은 지난달 13일쯤 재협의를 요청했고 최종적으로 이날 체험이 성사됐다. 두 사람은 이날을 위해 각자 만반의 준비도 했다.
로저스 대표는 지난 12일 경기 성남 인근 쿠팡 캠프를 찾아 일부 업무를 직접 연습했다. 염 의원 역시 지난 13일 퀵플레서와 한 차례 새벽 배송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이날 업무는 '쿠팡 친구들' 방식으로 진행했다. 퀵플렉서가 대리점과 계약돼 개인 사업자 형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라면 쿠팡 친구들은 쿠팡 정규직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말한다.
염 의원은 퀵플레서가 업무 강도도 더 세고 물량 또한 많았다고 했다. 많이 배달할수록 개인 수익도 많아지는 구조다. 그는 "퀵플레서 때는 약 240가구에 340건 물량을 처리했는데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며 "물건을 들고 계속 뛰었는데 그런 현장들을 쭉 보면서 (노동자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중간 중간 이야기도 나눴다. 주제는 야간노동 강도, 건강관리 필요성, 노동시간과 근무일수 문제, 수수료 구조. 염 의원은 쿠팡이 책임있는 회사로서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면 국민들 실망도 누그러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로저스 대표에 대해 "청문회 때는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부드럽고 대화도 적극적으로 하려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염 의원은 다시 한번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그는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이해하고 건강검진을 일정하게 받도록 의무화하는 것, 노동 시간이 늘어나도 (수수료 문제로) 수익은 차이가 없는 현실 등을 개선해달라는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