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내 우리 국적 선박에서 발생한 폭발·화재 사고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 한국 '프리덤 프로젝트' 압박 레버리지(지렛대)가 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사고 원인 규명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메시지에서 이전과는 분명한 온도차가 읽힌다. 실제 이란 측 공격에 의한 사고일 경우 현지 상황에 개입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청와대는 5일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긴급회의 후 언론공지를 통해 "사고 원인 등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평가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확인되는 대로 그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원인 파악과 대처 계획에서 상당한 적극성이 읽힌다.
사고는 전날 오후 8시40분쯤(한국시간) 확인됐다. 호르무즈 해협 내측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우리 선사 운용 선박 'HMM 나무(HMM Namu)' 호에서 폭발 및 화재가 발생했다. 이 배는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운용 선박으로 파나마 선적이다.
선박엔 우리 국적 선원 6명과 외국인 선원 18명 등 총 24명이 탑승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음에도 사고가 눈길을 끄는 건 미군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상선들의 통행을 돕는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을 개시한 후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란이 이 프로젝트에 반발하며 공격을 경고한 터라 폭발이 '피격'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피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은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계없는 국가들을 향해 발포했다"며 "한국도 이 작전에 동참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압박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 언급을 주목하고 있다"며 "미국 측 제안에 대해서도 여러 사안을 감안해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전의 원론적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발표와 합쳐 해석하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만약 이번 폭발과 화재가 이란 측 공격에 의한 것일 경우 미국 측이 제안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명분이 충분해진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일치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피격에 의한 화재가 확인된다면) 이란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면서 "미국에서는 한국에 분명한 입장을 요구할 것이며, 이를 계기로 미국과 공조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야당은 때를 놓치지 않고 청와대를 압박하고 나섰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며 프로젝트 참여를 촉구했다. 그는 "우리 선박이 공격받은 이상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이제 우리의 문제가 됐다"며 "자칭 외교 천재라는 이 대통령은 SNS로 이스라엘을 때리고 이란 편을 들더니 우리 선박 한 척 빼내지 못하고 있다. 안방 여포다운 압도적 무능"이라고 주장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지 선사들과 선원들이 안전하게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더욱 정교한 대응 시나리오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도 정부의 각별한 외교적 노력을 당부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우리 선원 6인과 외국인 선원 18인이 무사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고, 더 이상의 선박 피해가 없도록 관계 부처에서도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