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독립운동가에 '6·10 만세운동' 주도 박하균·강달룡·박내홍 선정

조성준 기자
2026.05.31 11:21

[the300]

일제강점기 3·1운동을 계승한 만세운동인 6·10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한 박하균(왼쪽·애국장)·강달룡(가운데·애족장)·박내홍(오른쪽·애족장) 선생./제공=국가보훈부

국가보훈부가 일제강점기 3·1운동을 계승한 독립운동인 6·10 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한 박하균(애국장)·강달룡(애족장)·박내홍(애족장) 선생을 올해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3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1926년 6월10일 순종 황제의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 만세운동은 3·1운동 이후 전개된 거국적인 항일독립운동이다. 당시 사회주의 계열·민족주의 계열·천도교 등은 순종 장례를 계기로 식민지 현실의 울분과 독립 열망을 일깨우기 위해 연합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만세운동 준비 과정에서 격문이 사전에 발각돼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었으나 학생들을 중심으로 격문과 태극기가 제작 배포되면서 만세운동이 본격 전개됐다. 비록 전국 봉기로 확산하지 못했지만 1920년대 항일민족운동의 전환점으로,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하균 선생은 1919년 함경남도 함흥과 홍원에서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재학 중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활동을 하며 6·10 만세운동 준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는 격문과 태극기 제작·배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출옥 후 항일 출판물을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강달룡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3·1운동을 주도해 징역 3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노동·농민운동,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해 노동자·농민·백정 출신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 향상에 노력했다. 그는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활동하며 천도교, 민족주의 계열과 연합해 6·10 만세운동을 준비하며 국내 독립운동에서 민족협동전선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내홍 선생은 천도교 청년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위원으로 6·10 만세운동 준비 중 격문 인쇄와 지방 연락을 담당하며 전국 봉기를 계획·준비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1920년대 국내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6·10 만세운동은 3·1운동의 정신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잇는 역사적 징검다리"라며 "이념을 초월한 민족협동과 학생 주도 항일운동의 지평을 연 결정적 분수령이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