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가로막는 배임죄

이태성 기자
2026.07.13 04:3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여전하고 AI시대 반도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능력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호 팹(공장)의 완공 일정을 2년이나 앞당겼다.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환경영향평가 면제 등 가능한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해 기업을 보조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기업이 속도를 내는 만큼 국회도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기업 경영을 옥죄는 규제를 해제해주길 바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임죄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삼자에게 이익을 주고, 사무 위임자 등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죄'를 의미한다.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는 구성요건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라 재계에서는 부담을 토로해왔다. 기업 경영 상 합리적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사후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면 배임죄로 처벌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놓고도 야당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배임죄 적용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지난달 26일 SNS(소셜미디어)에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불러 투자를 압박하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이사회가 정치적 압박에 밀려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투자하는 등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이사들이 법적 책임(배임 등)을 지게 될 수 있다"고 썼다. 정부의 사업 진행 방식을 문제삼는 글이었지만, 기업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내용이다. 배임죄가 살아있는 한 기업의 우려는 영원히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국회에서는 배임죄에 경영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하고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최근 배임죄 규정에 '합리적인 정보에 기초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의사결정을 한 경우에는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보지 아니한다'는 단서를 신설하고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배임죄를 가다듬어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적용을 막겠다는 취지다. 재계에서는 배임죄 적용 범위가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하루 빨리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기업들은 AI전환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대규모 투자 등 민감한 경영판단을 수시로 요구받고 있다. 배임죄는 그동안 기업의 경영 판단을 위축시켜 온 대표적인 불확실성이었다.기업에 불확실성은 곧 비용이다. 이 비용은 국회만이 낮춰줄 수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