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북아일랜드에서 존 흄과 데이비드 트림블이 마주앉았다. 흄은 남·북아일랜드 통일을 주장한 민족주의 사회민주노동당 대표, 트림블은 영국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얼스터연합당 대표였다.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1960년대 말부터 30여년 간 3500명이 죽었다. 상대는 가족과 동료를 죽인 원수였다.
그래도 둘은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흄은 무장투쟁 세력과 연계된 정당까지 모두 대화에 참여시키는 결단을 했다. 트림블도 당내 반대 세력을 필사적으로 설득해 협정으로 이끌었다. 장래 통일 가능성을 명시하는 협정 내용을 받아들였다. 극렬 지지자들은 두 사람에게 등을 돌렸다. 특히 트림블에겐 혹독한 정치적 대가들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굿프라이데이 평화협정'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대규모 유혈분쟁을 사실상 종식시켰다. 둘은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은 넬슨 만델라다. 그러나 수감된 만델라 대신 27년 간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끈 건 올리버 레지널드 탐보였다. 1960년 정부가 ANC를 불법화하자 탐보는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조직 내 인종·세대·이념 갈등을 끝없이 조율해야 했다. 탐보 리더십의 비결은 '합의 문화'였다. 당 내에 토론과 집단적 결정을 도입했다.
탐보는 만델라가 석방돼 협상에 나설 때까지 당을 지켰다. 아파르트헤이트(흑인 혐오·분리정책)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가 시작됐다. 그의 이름은 지금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OR 탐보공항)에 남아있다.
1975년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가 죽었다.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 산티아고 카리요는 당내 강경파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의한 체제전복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의회 내 경쟁을 선택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지만, 독재의 빈 자리를 자기 진영의 방식으로 채우지 않은 점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됐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투표가 한창이다. 누가 더 많은 당원과 국민의 마음을 얻었는지는 곧 확인된다. 이 과정을 보며 역사가 기억하는 정당의 대표들을 돌아본다. 한국 정치사에도 거물들이 많고 이들의 성과가 적잖다. 그러나 당심을 거슬러서라도 자기편을 설득한 사례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새 여당 대표는 지지자의 욕망을 그대로 대변하지 않고 때로는 자제와 양보를, 때로는 변화와 인내를 요구해야 한다. 당대표 당선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당원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것 보다 당원이 들어야 할 말을 하는, 당심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당대표를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