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 등 도심 속 화재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산모와 신생아가 지내는 산후조리원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안전 사각지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머니투데이가 14일 서울 일대 산후조리원 4곳을 취재한 결과 부실한 피난안내도와 비상계단에 산재한 장애물, 옥상으로 갈 수 없는 건축구조 등으로 인해 화재 시 피난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산후조리원이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등과 함께 다중이용업으로 지정돼 한 건물에 위치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산모와 신생아 등 '이동 약자'에 대한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엉터리' 피난안내도, '문' 인줄 알고 열어보니…
서울 강남구 5층 규모 건물 2층에 위치한 산후조리원. 1층에는 화재에 취약한 고기집과 족발집 등 음식점과 커피숍 등이 입점했고 건물 주위는 각종 상점에 전력을 대는 전깃줄이 어지러이 지나고 있었다.
산후조리원 내 비치된 피난안내도에는 방화문이 설치된 '전실'이 표시됐다. 전실은 통상 화재 시 연기를 막아 대피공간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비상구로 연결돼있다. 안내도를 따라 이곳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이 잠겨있었다. 조리원 관계자는 "산모 남편들이 종종 이곳에서 담배를 피워 잠가뒀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전실로 들어간 뒤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외부계단이나 테라스 등 대피로로 이어지는 문 대신 1mX0.5m의 창문이 있었다. 창문 밖은 당연히 '허공'이었다. 안내도에 따라 피난했을 시 방에 갇히는 셈이다. 완강기 등 지상으로 내려갈 장비도 없었다.
화재시 연기 통로가 되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방화문이나 방화셔터 등이 설치되지 않았다. 성재표 창신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층의 연기가 엘리베이터실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산후조리원의 경우 산모와 아기가 있어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 옥상 대피 불가, 각종 장매물…'비상계단' 비상 시 무용지물
서울 서대문구 카페와 당구장, 대중사우나 등이 입주한 8층 규모의 상가건물 6층에 위치한 산후조리원. 해당 산후조리원 내부에는 지상으로 통하는 별도의 비상계단이 있었으나 잠겨있었다. 산후조리원 관계자는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평소 잠궈 둔다"고 말했다.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찾았다. 산후조리원 복도를 가로질러 계단을 통해 보통 걸음으로 지상까지 약 2분이 소요됐으나 최고층까지는 20초면 충분했기 때문. 그러나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가 건물 위에 건설된 아파트 주민들만이 옥상 출입이 가능했다. 화재 시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산모들이 아기들을 업고 카페와 당구장, 대중사우나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손님들과 뒤엉킬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산후조리원 비상계단에는 '피난 장애물'들도 즐비했다. 서울 서초구 6층 건물 중 2층~6층에 위치한 산후조리원 비상계단에는 광고시설물이나 빨래건조대 등 각종 장애물들이 놓여 있었다. 산후조리원에 입원해 있는 A씨는 "복도에 이런 장애물은 치우는 게 맞다"며 "불이 났을 때를 상상해본다면 끔찍하다"고 했다.
◇ "산후조리원의 화재에 대한 규제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산후조리원에 거동이 불편한 산모나 아기들이 지내는 만큼 화재를 대비해 추가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산후조리원은 휴게음식점과 단란주점영업, 유흥주점영업, 비디오물소극장업, 학원, 목욕장업, 게임제공업,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 노래연습장업, 골프연습장업 등과 함께 다중이용업소로 지정돼있다. 또 다중이용업소는 1종 근린생활시설, 즉 상가건물에 입주가 가능하다.
이에 상가건물에서 산후조리원이 다른 상점과 함께 놓이는 상황을 꼬집으면서 별도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엽래 경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후조리원을 현재 근린생활시설에서 주거시설로 바꾸는 등 소방 기준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방화문이 잠겨 있는 건 화재 시 사망과 같은 의미"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