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LG 담합 피해, 감정료 아까워 손놓은 지자체

김정주 기자
2015.03.12 05:27

서울시 등 지자체 15곳, 납품담합 피해 소제기 후 감정료 미납… 결국 패소 가능성도까지

삼성전자와LG전자의 가격담합으로 에어컨·TV 등을 고가에 납품받아 피해를 본 지자체들이 소송을 걸어놓고도 감정료를 내지 않아 패소 위기에 처했다.

승소에 필수적인 감정료를 지자체마다 서로 미루고 납부하지 않아 1년 넘게 변론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것. 가격담합에 따른 피해 금액을 받아낼 길이 있는데도 15개 지자체들이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시, 경기도,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등 각 지자체 15곳은 2011~2012년 삼성전자와 LG전자, 오텍캐리어 등을 상대로 4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2부(부장판사 권혁중)에 계류 중이며 각 건별로 지자체들이 요구한 배상금액은 각각 1억~1억3000만원 등 총 4억3100만원이다. 2010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공기관에 시스템 에어컨과 TV(LCD, PDP) 등을 납품하는 업체들이 납품 가격을 합의한데 대해 191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공정위는 이들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조달단가를 인상하거나 유지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적발해 삼성전자에 175억1600만원, 캐리어에 16억51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LG전자는 1순위로 감면신청을 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는 2011년 7월 에어컨과 TV 피해에 대해 각각 2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나머지 지자체 13곳도 2012년 4월 집단소송을 냈다. 경기도 역시 같은 해 5월 소송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소장을 통해 "TV시장 점유율 96.6%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조달단가를 높게 형성시켜 정부기관의 예산을 낭비하게 하는 등 소비자 후생을 훼손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담합이 없었을 때 형성됐을 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운만큼 현행 공정거래법57조에 따라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에 기초해 상당한 손해액을 적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율촌을 선임했고 LG전자는 태평양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몇 차례 진행되던 재판은 2013년 11~12월 이후 1년 넘게 멈춰있다. 지자체가 손해액에 대한 감정을 신청한 뒤 정작 비용부담을 이유로 감정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자체 13곳을 대리하고 있는 정부법무공단 측은 "서울시에서 먼저 제기한 소송이 있어 관련 감정결과가 나와야 재판이 진행될 것"이라고 책임을 미뤘다. 서울시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향 측도 "감정결과를 공유하기 때문에 비용을 서울시 혼자 댈 수 없다"며 "각 시도별로 감정료를 배정해 분담해야 하는데 예산배정 문제 등이 있어 진행이 더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소송을 진행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진녕 변호사는 "민사 소송의 대원칙인 변론주의, 처분권주의에 따라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며 "소송이 길어진다고 해서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가 석명(주장이 명확하지 않을 때 정정·보충 요구)을 요구한 뒤에도 입증하지 못하면 패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감정료를 예납하지 않을 경우 감정 부족으로 기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지자체들이 비용부담을 이유로 시간을 끈데다 지난달 초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장까지 바뀌면서 재판 진행은 더 더뎌지게 됐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