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그것은 ‘몰상식’이고, ‘비정상’이며, ‘부조리’라는 이름의 사악한 유령이다. 그것은 상식적인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일도 아니며, 합리적인 짓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보복운전이 될 수도 있고, 국가정보원의 일탈이 될 수도 있으며, 선생을 때리는 학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일 수 있고, 북한의 3대 세습일 수 있으며,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일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광기’라는 촉매제에 힘입어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10여년전 한 앵커가 즐겨 쓰던 “어처구니 없는 일”은 이제 눈만 뜨면 벌어지는 세상이 됐다.
가령 일간베스트(일베)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보자. 그곳에 서식하는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다른 이에게 전염시키기 위해 악에 받친 듯 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인증 샷을 찍는 ‘놀이’를 하는 식이다.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있을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아들딸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평범한 악’이 이 사회에 가져다 줄 비극은 과거에도 절실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가 그렇다. 당시 실무책임자로 1962년 6월1일 처형된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폴란드 수용소로 이송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법정에서 “난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며 “월급을 받으면서도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란 항변을 늘어놔 큰 충격을 줬다.
이를 지켜 본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이 말하기의 무능을 낳았다"며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학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저서 ‘타인의 영향력’에서 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 실험’을 언급하며 군중의 '동조 심리'에 대한 악마성을 언급한다. 1971년 8월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건물 지하에 모의 감옥을 만든 뒤 대학생 24명을 반으로 나눠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맡겼다. 실험이 시작되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폭군으로 돌변한 것이다. 죄수들을 잠을 못 자게 하고, 쇠사슬에 묶인 채 화장실에 다녀오게 하고, 남색 행위를 강요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착한'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도 점차 악당으로 변해갔다. 상식과 양심, 이성은 사라졌다. 지옥이 돼 버린 모의 감옥 때문에 당초 2주 예정이었던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됐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역시 모두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이들도 “맡은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이 정국을 뒤덮고 있다. 대선 개입, 간첩조작 사건 등으로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국정원이다. 안타깝게도 그 와중에 한 가장이 목숨을 끊었다. 묻고 싶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민(타인)의 입장을 고려했는가.
아렌트의 지적대로 '생각의 무능'은 비단 국정원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우리가 그동안 '평범한 악'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우리도 이미 '평범한 악'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
우리는 좀 더 단호해져야 한다. 그것을 보며 둔감해진 상태로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고 슬금슬금 물러서면 안 된다. 자꾸 뒷걸음치다 보면 그것들은 어느덧 발치까지 와 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