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살고 싶어요. 지금은 바라지도 못하죠…."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 주민 이모씨(60·여)의 새해 소망은 소박했다. 이씨는 아들딸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곳에 이사와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매는 4년 전 품을 떠나갔고 이씨의 곁에는 남편만 남았다.
2015년의 마지막 날 만난 이씨는 "연말이라는 핑계로 가족들이 모였으면 좋겠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며 "각자 살기가 바쁘니까"라고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어 "아직 아들딸들이 결혼도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이렇게 좁은 곳에서 언제까지 함께 살 수는 없으니 나가서 살게 됐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백사마을은 1967년 서울 도심 철거민들이 터를 잡아 생긴 곳이다. 주소인 중계동 104번지를 따서 백사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9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등록된 1200여 가구 중 절반만 남았다. 가족단위 가구도 있지만 독거노인 비율이 높다.
다른 백사마을 주민 노모씨(73·여)에게 올해 12월31일은 또 다른 목요일일 뿐이었다. 노씨는 "연말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며 "오늘도 점심먹고 장사를 나가야 하는 1년 중에 하루일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노씨는 은행 앞에서 야채 행상을 한다. 쌀쌀한 겨울날 하루종일 쭈그려 앉아있어야 4000원을 쥘 수 있다. 교통비가 아까워 리어카를 끌고 50분 거리를 걸어다닌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월세 10만원을 감당하기 어렵다.
노씨는 "점심은 들었냐"고 묻더니 푸근한 보리밥 한 공기에 김치와 김을 차려왔다. 고기 반찬이 없어 김을 내왔다고 했다. 노씨는 "일본 가 있는 작은 아들이 '빨리 돈 벌어서 도와줄게'라고 가끔 전화를 해 온다"며 "삼남매가 돈 많이 벌어서 건강하게 잘 사는 게 새해 소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56)도 "연말이라고 별 게 있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어머니 박모씨(86)를 15년째 모시고 있다. 김씨는 50여년 전 이른 나이에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를 위해 결혼도 마다한 효자다.
김씨의 연말연초는 남들보다 고되다. 뇌경색을 앓는 어머니에게 밥을 직접 떠먹이고 대소변도 받아드려야 한다. 휴일인 1월 1일은 요양사가 쉬어 홀로 병수발을 들어야 한다. 보신각에 삼삼오오 모여 새해를 향한 '카운트다운'을 세는 풍경은 김씨에게 '딴 세상 이야기'인 셈이다.
백사마을 주민들의 연말이 마냥 춥기만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따뜻한 가족애와 대문을 넘나드는 이웃사랑으로 서로를 보듬는 미덕 덕분이다.
박씨와 병수발을 들어주는 아들 김씨 사이에서는 모자 간의 애틋한 정이 피어났다. 김씨는 "이제 어머니에게 남편이나 다름없지 않냐"는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는 "같은 대문을 두고 5가구가 같이 살고 있다"며 "우린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미소를 지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24년 째 마을을 지키고 있는 주민 정모씨(61·여)는 이웃 서모씨(82·여)를 '엄마'라고 소개했다. 한참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연말이라고 특별할 건 없지만 오후에 친한 이웃들끼리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얘기할 거다"라고 했다. 서씨는 "정씨의 음식솜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고 거들었다.
정씨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주민이 벌컥 문을 열더니 "목욕탕 가다가 넘어졌다"며 "새 신을 신고 나왔는데 더 미끄럽다"고 너스레를 떨고는 사라졌다. 정씨는 연탄 난로 위에 덥혀둔 물로 율무차를 끓여 건네면서 "워낙 친한 사이라 저렇게 불쑥 들어와 말을 걸기도 한다"며 "오며 가며 머무르다 보니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보다 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