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엘(the L) / 법관과 판결 ◇
박보영 대법관(55·연수원 16기)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한 구조조정이라는 대법원 판결 주심을 맡은 바 있다.
2012년 1월2일 김용덕 대법관(59·11기)과 함께 대법관 임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처음 임명을 제청한 대법관들이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다음은 박 대법관의 주요 판결들.
◇ "쌍용차 정리해고, 정당한 구조조정"
박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3부는 2014년 11월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오며 논란이 됐던 쌍용자동차 해고무효 소송에서 "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4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거듭 판단이 뒤집히며 논란은 오히려 커졌다.
쌍용차는 2008년 판매부진과 금융위기로 경영난에 빠진 끝에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이후 법원의 인가를 받아 전체 인력의 3분의 1이 넘는 2646명을 정리해고키로 결정하고 이를 노조에 통보했다. 노조는 평택공장을 점거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극심한 갈등을 겪은 끝에 쌍용차는 해고 규모를 조정해 희망퇴직자와 무급휴직자를 제외한 165명을 정리해고했다. 이들 중 153명은 "근로기준법상 허용요건을 갖추지 못한 정리해고인 만큼 무효"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급심 판결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적법한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 때문에 엇갈렸다. 현행 근로기준법 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1심 재판부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해 쌍용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유동성 위기가 있었던 것은 인정되지만 구조적·계속적 재무건전성 위기가 있었는지 증거가 불분명하다"며 해고 결정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쌍용차가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중요한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잉여인력이 몇 명인지 등은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라며 사건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아울러 쌍용차가 정리해고에 앞서 부분휴업과 임금동결, 순환휴직 등 조치를 실시하는 등 해고를 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인정했다.
이같은 판결이 나오자 쌍용차 노조는 "대법원이 해고 노동자들에게 다시 대못을 박았다"며 반발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 "아이 데리고 귀국한 다문화가정 엄마, 유괴 아니다"
박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6월 부부 중 한쪽이 일방적으로 미성년자인 아이를 데리고 출국했더라도 유괴에 해당하는 '국외이송약취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2006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은 베트남인 A씨는 남편의 학대를 받은 끝에 한국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생후 13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이후 A씨는 아들을 친정에 두고 양육비를 벌기 위해 입국했다가 유괴 혐의(약취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남편과 이혼했고, 아들의 양육자로는 A씨가 선정됐다.
전원합의체는 보호자가 폭행이나 협박 없이 미성년자인 자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보호와 양육을 계속한 경우 유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상대방 부모의 동의를 얻지 않았더라도 이같은 행위에 대해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유괴 혐의)가 성립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은 국제결혼이 증가해 다문화가정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귀국 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기준이 되는 판례를 남겼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어떤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 기준을 선언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 "영문자-독음 섞인 상표 등록한 회사, 둘 중 하나만 써도 취소사유 아니다"
박 대법관은 또 전원합의체 주심으로서 영문자나 그 한글 독음 중 한 부분이 생략된 채 사용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표 사용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을 이끌었다.
㈜에이스21은 1992년 '콘티넨탈'과 'CONTINENTAL'을 병기하는 1개의 상표를 등록했고, 이후 영문표기인 'CONTINENTAL' 부분만 상표로 사용했다. 이에 독일의 콘티넨탈 라이펜 도이치란트는 특허심판원에 "에이스21이 등록상표를 3년 넘게 정상적으로 쓰지 않았다"며 상표등록을 취소해달라고 청구했다.
특허심판원이 콘티넨탈 라이펜의 청구를 받아들이자 에이스21은 소송을 냈고, 특허법원은 "영문자와 독음부분이 하나의 상표로 등록된 이상 영문표기만으로는 상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른 판결이었다.
그러나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뒤집고 에이스21의 손을 들어줬다. 전원합의체는 "등록상표를 사용한다는 것은 등록된 상표와 '동일한 상표'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동일한 상표'는 거래통념상 등록상표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것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상품의 특성이나 시장,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등록상표를 다소 변형해 쓰는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었다. 전원합의체는 또 "영문자와 그에 대한 독음이 결합된 상표를 등록한 뒤 영문자나 독음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을 생략해 쓰는 일도 흔히 발생한다"며 "이같은 경우 등록상표와 동일성을 부정하면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의 신뢰를 깨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은 법률적 조력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가 뜻하지 않게 상표 등록을 취소당하는 불이익을 입지 않게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국정원 관계자들 실형 확정
이 밖에도 박 대법관은 소부 주심으로서 지난해 10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재판의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가정보원 과장 김모씨(50)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과장은 간첩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던 유우성씨(36)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 등을 위조해 법원에 제출한 혐의(모해증거위조 등)로 기소됐다. 1심은 김 과장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지만, 2심은 "국정원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했다"며 징역 4년으로 형량을 늘렸다.
반면 범행에 가담한 전 대공수사처장 이모씨(57)는 징역 1년6월에서 벌금 1000만원으로 형이 대폭 감경됐다. 과장 권모씨와 이모 전 선양 총영사는 벌금 7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3부는 이같은 판결을 모두 원심대로 확정했다. 이 판결로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은 모두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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