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과 판결] 김창석 대법관

황재하 기자
2016.01.29 07:51

[the L] "대형마트 영업규제 정당" 판결 주심

[편집자주]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있다. 공직에 몸담은 법관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판결을 통해 웅변할 뿐이다. 판결을 살펴 보면 우리 사법부에서 일하고 있는 법관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법관들의 출신 지역이나 학력 등 판결에 대한 선입관을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은 기사에서 배제했다.
김창석 대법관. /사진=뉴스1

김창석 대법관(60·연수원 13기)은 이재현 CJ그룹 회장(56)에게 가중처벌법을 적용한 원심을 파기한 바 있다. 유통업계와 지방자치단체 사이 오랜 갈등의 원인이 된 대형마트 영업제한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주심을 맡았다.

고영한(61·11기)·김신(59·12기) 대법관과 함께 2012년 8월2일자로 임명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다음은 김 대법관의 주요 판결들.

◇이재현 CJ그룹 회장 실형 파기…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실형

김 대법관은 지난해 9월 대법원 소부 주심으로서 이재현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배임액수를 정확하게 산정할 수 없는데도 원심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장의 혐의는 1600억원대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등이다. 이 가운데 배임 혐의는 이 회장이 실질적으로 지배·소유하는 팬재팬이 건물 2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CJ 일본 법인이 연대보증을 서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 회장이 일본 은행에서 대출받은 금액은 당시 환율로 309억원이었다.

배임 액수가 5억원 이상이면 특경가법이 적용되는데, 이 중에도 혐의 액수가 50억원을 넘으면 최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받는다. 형법상 배임죄의 법정형량이 징역 5년 이하, 업무상 배임죄의 법정형량은 10년 이하인 것과 비교해 무거운 처벌이다.

파기환송 전 2심 재판부는 309억원을 CJ의 손해액으로 보고 특경법상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회장이 회사에 연대보증을 서게 한 액수 전체를 피해 금액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2부는 팬재팬이 은행빚 일정 부분을 갚을 능력이 있었던 만큼 연대보증 금액 전체를 혐의 액수로 산정한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회장의 배임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만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재계에서는 가중처벌법 적용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 만큼 파기환송심에서 이 회장이 형을 감경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같은 해 12월 이 회장에게 특경가법상 배임죄 대신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면서도 실형을 유지했다. 형량은 종전 3년에서 2년6월로 다소 줄었다.

이 회장이 판결에 불복해 다시 상고하며 이 사건은 재차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하고 의무휴업 지정한 처분, 정당하다"

김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주심으로서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한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의무휴업일을 둘러싼 지자체와 유통업계의 오랜 갈등 끝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유통업계와 지자체의 갈등은 2013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도입되며 시작됐다. 지자체들은 신설된 조항에 따라 대형마트의 오전 0~8시 영업을 제한하고 매달 2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취지의 조례를 발표했다.

양측의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번진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기는 한편 공개변론을 열고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수렴했다.

업계 측에서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로 비정규직 근로자나 중소상인, 소비자들이 도리어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자체 측에서는 대형마트 규제가 세계적 추세이며 대형 유통업체가 골목상권까지 진출해 전통시장 매출이 크게 줄어든 만큼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전원합의체는 지자체의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지 않아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고, 처분 과정에서도 유통업계의 권리 등 필수적 요소를 모두 고려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업계의 손을 들어 준 2심 판결은 파기됐다.

전원합의체는 또 "적어도 대형마트 등의 연도별 증가 추세와 그에 대응하는 전통시장 등의 지속적 위축현상이 일반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전원합의체는 영업규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같은 규제에 따른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의 매출 증대 효과 등을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고, 단순히 수치자료만으로 규제 수단의 실효성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고 판단을 유보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도 대형마트 측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대법원과 헌재에서 모두 유통산업발전법과 이에 따른 처분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업계와 지자체 사이 법적 분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신고한 내용과 달리 차로 점거, 유죄"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2부는 2014년 6월 신고한 내용과 달리 도심에서 차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이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신고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지 않는 한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종전까지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잇달아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재능교육 노동조합원들은 2009년 차로를 따라 행진하겠다는 신고 내용과 달리 서울 혜화동 본사 인근을 행진한 뒤 1시간여 동안 연좌 농성을 벌였다. 검찰은 조합원에게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고, 1심 재판부는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주요 도로가 아닌 이면 도로에서 농성을 한 점, 이미 행진하기로 신고한 곳에서 농성을 벌인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신고한 범위를 다소 벗어났지만 그 정도가 '현저하다'고 볼 수 없어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집회가 일부 신고 내용대로 진행됐지만, 당초 행진 신고를 한 곳에서 장시간 연좌 농성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 수단이 행사됐다"며 "상황을 전체적·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신고 범위를 현저히 일탈했다"고 판단,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 판결은 이후 비슷한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고 내용에 비해 차로를 추가로 점거했다면 일반교통방해죄가 성립하는 요건인 '현저한 일탈'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실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이듬해 2월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지부장은 2011년 당초 신고 내용과 달리 서울역에서 남영삼거리 사이 4차로 전체를 점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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