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14년 10월.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한화 본사 앞. 한화 이글스의 한 팬이 1인 시위에 나섰다.
마스크를 쓴 이 한화 팬은 피켓에 "한화 야구를 살릴 수 있는 것은 김성근 감독뿐입니다"라며 "존경하는 회장님, 6년간 꼴찌해도 변함없이 한화만을 응원한 한화 팬들에게 회장님의 의리를 보여주세요"라고 적었다.
#장면 2
2014년 11월.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 한화의 마무리 캠프장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서있다. 김태균·정근우 등 고참 선수들의 하얀 한화 유니폼은 진흙투성이다.
#장면 3
2015년 7월. 한화는 44승40패(승률 0.524)를 거두며 5위의 성적으로 시즌 전반기를 마쳤다. 비난보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한화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반전 활약 구단 1위-우승후보 2위'에 오르며 인기를 증명했다. 끈질긴 야구를 펼치며 많은 역전승을 챙겼고 '마리한화'(한화이글스에 중독된다해서 마리화나의 '마리'와 한화이글스의 '한화'를 합성한 신조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장면 4
2016년 4월14일. 김성근 감독이 덕아웃에서 사라졌다. 김 감독은 경기가 기울어진 5회말이 끝나자 자리를 비웠다. '벌투'로 볼 수 있는 투구를 한 송창식 투수도 5회를 끝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화구단은 '김 감독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이날 한화는 두산베어스에 17대 2로 대패했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최다실점 경기였다. 중간계투인 송창식 투수는 1회 2사 만루 교체투수로 투입돼 5회까지 홈런 4개를 허용하고 개인 최다 12실점을 했다.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사라졌습니다. '불통할배'라는 거친 표현까지 돌고 있습니다. 2년 만에 김성근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식었습니다.
한화는 최근 3년간 FA 선수 영입에만 465억원을 썼습니다. 정근우·이용규·권혁·정우람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한화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더 이상 없는 살림에 꿋꿋이 팀을 꾸려가는 구단이 아닙니다.
한화는 15일 현재 11경기에서 2승9패를 기록, 최하위에 처져 있습니다. 팬들은 "성적표보다 나쁜 것은 경기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보여줬던 이른바 '마리한화'의 끈질긴 힘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김성근 감독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선수 혹사 논란까지 다시금 일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15일 두산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난타당한 송창식 투수를 내리지 않고 '벌투'를 준 것에 대해서도 김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김성근 감독에게 이런 비난은 익숙한 일입니다. 김 감독의 냉철한 리더십과 가혹한 훈련량은 항상 '안티'를 동반해 왔습니다. '성적지상 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선수를 육성하지 못한다는 오명이 덧씌워 지기도 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30여년 동안 'OB-태평양-삼성-쌍방울-LG-SK-한화' 등 국내 프로야구 7개 구단에서 감독을 맡았습니다. 다양한 구단에서 김 감독을 영입한 이유는 바로 '성적'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적을 냈습니다. '우승 청부사' '야신'이란 별명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오늘의 비난이 내일의 찬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팬들은 팀성적이 떨어지면 감독을, 선수를 욕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맛에 야구를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성근 감독님, 팬들은 팀이 꼴등을 해도 변함없이 응원을 보냅니다. 야구장에 모인 관중들은 우리팀이 10점을 뒤지다 단 1점을 쫓아가도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팬들은 "큰 점수차로 경기가 기울었다고 무너진 투수를 마운드에 세워 놓는 그런 모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9회말 2아웃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리한화'의 모습을 팬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