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 오늘… 일상의 아름다움 수놓은 피천득, '전설'로 남다

이미영 기자
2016.05.25 06:05

[역사 속 오늘] 은전한닢·인연 등 수필로 잘 알려져… 한국의 대표문인 자리매김

우리나라 대표 문인인 피천득은 2007년 5월25일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나무위키

"그저 이 은전 한닢이 갖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국어 교과과정을 배운 30대 이상에게 이 문구는 참 익숙하다.국어 교과서는 대체로 학생들에게 '암기를 요구하는 따분한 책이다. 한 늙은 거지가 은전 한닢을 모으기 위해 살아왔던 6개월이란 시간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 '은전한닢'은 수험생활에 지친 학생들에게 '숨통'을 틔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의 평범함을 하나의 서정적인 작품으로 탄생시킨 주인공은 바로 피천득 수필가다.

2007년 5월25일, 9년 전 오늘은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이 노환(97세)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수필처럼 곱고 소박하게 살다 갔다는 평가를 받는 피천득 선생은 '시'와 같은 수필을 써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피천득은 1910년 5월29일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당시 피천득의 부친은 종각에서 종로5가, 양재동 일대의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던 '부호'였다. 하지만 집안의 부유함과는 별개로 피천득은 다소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가 10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후 피천득은 그의 삼촌 집에서 자랐다.

그의 삶은 춘원 이광수를 만난 후 크게 달라졌다. 피천득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본 이광수가 그에게 상하이 유학을 제안한 것이다. 그가 호로 삼은 '금아(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묻지 않은 아이)'도 이광수가 붙여준 것이다.

17살이 되던 해 피천득은 상해로 떠나게 된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거쳐 상하이 후장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 상하이에 머무를 당시 그가 존경했던 안창호 선생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피천득은 독립운동의 길을 택하는 대신 문학가로 성장했다. 서울에서 잠시 미국 스탠다드오일 회사의 직원으로 있었지만 1945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대학교 예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의 길을 걷는다. 광복 후인 1946년부터 30년동안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이미 등단한 문인이었다. 사실 그는 수필가가 아닌 시인으로 잘 알려졌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고 뒤이어 '가신 님'(1932) 등을 발표했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그가 자신의 짧은 글을 엮어서 낸 '수필'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이 수필집에는 '은전한닢','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등이 수록됐다. 그가 겪은 삶을 감각적이면서 섬세하게 풀어냈다.

특히 1996년 그가 출간한 수필집 '인연'은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모성에 대한 찬사 등 여성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표현해 호평을 얻었다. 특히 '서영이'는 그의 딸 피서영을, '아사코'는 그가 직접 본 한 일본 여성을 모티브로 해 잘 알려졌다.

피천득은 수필뿐만 아니라 영문학자로서도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그가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54편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칭송한다. 일부 학자는 그의 소네트 번역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원작을 제대로 소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고 맑았던 피천득의 삶의 행적은 스스로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도산 안창호 장례식에 가긴 갔는데, 거길 들어가면 내 몸이 위험해 겁이 나서 뒤로 물러서 있었다"며 "그때 왜 좀 더 용감하지 못했나"고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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