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오늘…'월드컵 4강 신화' 시작된 날

박성대 기자
2016.05.31 06:00

[역사 속 오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강호' 이탈리아·스페인 누르고 4강 진출

2002년 월드컵에서 대형 태극기로 응원하는 응원단의 모습./출처=국가기록원

1996년 5월 31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날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수년 전부터 아시아권 첫 월드컵 개최를 추진해온 일본은 개최지 선정을 자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FIFA의 독재자'로 불리던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도 일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에 반해 후발주자로 개최경쟁에 뛰어든 대한민국은 선정기간 내내 다소 열세를 보였다. 하지만 22년간 FIFA를 주무르던 아벨란제를 견제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우리나라 지지를 선언하면서 개최지 경쟁 양상이 백중세로 흘렀다.

결국 FIFA는 스위스 취리히 FIFA본부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2002년 월드컵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공동개최하기로 정했다. 두 나라가 공동개최로 개최지가 선정된 것도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었고 아시아권에서 개최가 확정된 것도 최초였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이자 21세기 첫 월드컵 유치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6년의 준비기간 뒤 14년 전 오늘(2002년 5월 31일) 2002 한일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이날 오후 8시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전 대회(1998 프랑스월드컵)우승팀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를 시작으로 31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2년여 동안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친 본선 진출 32개국은 한국과 일본 20개 도시에서 8개조로 나쥐어 조별 리그전을 벌였다. 당시 수차례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번번히 조별예선의 벽에 막혔던 우리나라는 '사상 첫 16강 진출'의 기원을 안고 대회를 맞이했다.

대회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개막전부터 프랑스가 세네갈에 0대 1로 지는 것을 시작으로 우승후보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프랑스가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며 짐을 쌌다.

2002 한일월드컵 조별예선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은 뒤 거스 히딩크 감독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AFPBBNews=뉴스1

개최국인 우리나라도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D조에 속한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폴란드전 2대 0 승리 △미국전 1대 1 무승부 △포르투갈전 1대 0 승리를 기록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이후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전반 18분 선제골을 허용한 후 줄곧 끌려가다 후반 43분 경기 종료 직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 승부로 이어갔다. 결국 안정환의 연장 후반 12분 골든골로 2대 1 승리를 거두며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 홍명보의 침착한 성공으로 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전국민을 들끓게 했다.

우리나라 축구팀의 선전으로 대회 기간 내내 대한민국은 '붉은악마'의 함성으로 뒤덮혔다. 남녀노소 모두 'Be the Reds!'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향했다. 이때부터 외쳤던 '대∼한민국' 구호는 이후 종목을 불문하고 국가대항전 경기가 펼쳐지는 곳에선 쉽게 들을 수 있는 응원 구호로 자리잡는다.

우승후보들의 조기탈락과 세네갈·미국의 8강 진출, 대한민국·터키의 4강 진출 등 이변이 속출했지만 우승국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독일을 상대로 호나우두가 두 골을 터뜨리며 우승 트로피를 손쉽게 차지했다.

우리나라와 월드컵을 공동개최한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선전하며 2승 1무를 기록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전에서 터키에 발목이 잡혀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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